법조팀 기자 “내가 쌍차(쌍용차)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경찰관이라 소개하는 법이 없었다. 2010년 겨울 경북 구미의 반도체 부품업체 케이이씨(KEC) 노조 와해 사태로 노조원 200명이 경찰 1500명과 대치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내려왔다던 경찰정보관은 자신을 ‘쌍용차 해결사’라고 소개했다. 노조원 64명이 구속된 쌍용차 사태를 ‘해결’했다던 그는, 한밤중에 케이이씨의 사용자 쪽은 뺀 채 노조 쪽 협상 대표만을 모텔방으로 불러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 쪽 대표는 없는 교섭이었던 만큼 노조 쪽 협상자는 정보관이 회사를 대리해 나온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노조로부터 양보교섭안을 얻는 데 실패한 이 정보관은 별 소득 없이 구미를 떠났다고 한다. ‘모텔방 교섭’을 주도한 정보관은 경찰청 정보국 소속 노정팀장 김아무개씨. 지난해 경정 정년을 꽉 채워 퇴직했다. 김씨는 1986년 순경으로 임용돼 1997년부터 20년 넘게 경찰 노정담당 정보관으로 일해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노사 분규 현장에서마다 그가 해결사를 자처했다는 전언이 무성했다. 이 정보관은 현재 재판 중인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와해 사건에도 등장한다. 그는 삼성 쪽 노사담당자 사이에서는 ‘김 사장’으로 불렸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 피고인 32명 중 유일한 경찰관인 ‘김 사장’ 주도 아래, 삼성은 노동자들과 ‘블라인드 미팅’을 했다. 케이이씨 ‘모텔방 교섭’과 닮은꼴이었다. 삼성 쪽 노조 와해 미팅 문건에서 그는 ‘비선’으로 불렸다. ‘노사 화합’을 도모한다는 노정담당 정보경찰은 법이 개입하는 공적 영역과 은밀한 사적 영역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했다. 김 사장은 삼성의 노조 파괴 배후로 지목된 강경훈(경찰대 2기) 삼성전자 부사장과 노정정보관들의 정기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검찰은 모임의 성격을 의심했지만, 그는 “제가 술 한잔 생각나면 모이는 지인들”이라며 ‘비즈니스’가 아닌 ‘친목’ 모임임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교섭 갈등에 개입한 것은 “공무”라 주장했다. “경찰관은 사회안정 해결이 기본 의무다. 노사 양쪽의 개입 요청, 사회 불안 요소 상존의 두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관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그 어떤 법 조항도 경찰에 쟁의행위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합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정리할 법적 권능을 주지는 않았다. 공직의 경계를 뛰어넘어 ‘쌍용차 해결사’이자 ‘김 사장’ ‘비선’으로 활동한 그에게 검찰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비위 행동이자 일탈이더라도 권한 없는 행동을 한 것만으로는 기소하기 어려웠단다.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법령’에 정보관의 역할은 치안정보업무 기획부터 지도·조정 등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결국 검찰은 김 사장을 2013~2017년 삼성전자서비스 쪽에 유리하도록 교섭에 개입한 대가로 뇌물 61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만 기소했다. 법원은 김씨의 뇌물 혐의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가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맺은 인맥을 활용해 정보경찰이 사쪽을 대리해 노사협상을 진행해온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넘길 것인가?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이 문제를 따졌지만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 경찰청의 태도도 안일하다. ‘김 사장’이 속했던 경찰청 정보국 간부는 검찰 조사에서 “블라인드 교섭에 경찰이 참여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고, 김 사장이 ‘핫라인’으로 노조와 연락한 것을 두고도 “몰랐다,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조직적 개입이 아니라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얘기다. 지금도 경찰 내부엔 수많은 정보경찰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퇴임한 선배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김 사장’이나 ‘비선’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누구든 답을 내놔야 하지 않겠나. penj@hani.co.kr
칼럼 |
[한겨레 프리즘] 어느 정보경찰의 오랜 ‘외도’ / 장예지 |
법조팀 기자 “내가 쌍차(쌍용차)를 해결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경찰관이라 소개하는 법이 없었다. 2010년 겨울 경북 구미의 반도체 부품업체 케이이씨(KEC) 노조 와해 사태로 노조원 200명이 경찰 1500명과 대치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내려왔다던 경찰정보관은 자신을 ‘쌍용차 해결사’라고 소개했다. 노조원 64명이 구속된 쌍용차 사태를 ‘해결’했다던 그는, 한밤중에 케이이씨의 사용자 쪽은 뺀 채 노조 쪽 협상 대표만을 모텔방으로 불러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 쪽 대표는 없는 교섭이었던 만큼 노조 쪽 협상자는 정보관이 회사를 대리해 나온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노조로부터 양보교섭안을 얻는 데 실패한 이 정보관은 별 소득 없이 구미를 떠났다고 한다. ‘모텔방 교섭’을 주도한 정보관은 경찰청 정보국 소속 노정팀장 김아무개씨. 지난해 경정 정년을 꽉 채워 퇴직했다. 김씨는 1986년 순경으로 임용돼 1997년부터 20년 넘게 경찰 노정담당 정보관으로 일해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노사 분규 현장에서마다 그가 해결사를 자처했다는 전언이 무성했다. 이 정보관은 현재 재판 중인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조 와해 사건에도 등장한다. 그는 삼성 쪽 노사담당자 사이에서는 ‘김 사장’으로 불렸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 피고인 32명 중 유일한 경찰관인 ‘김 사장’ 주도 아래, 삼성은 노동자들과 ‘블라인드 미팅’을 했다. 케이이씨 ‘모텔방 교섭’과 닮은꼴이었다. 삼성 쪽 노조 와해 미팅 문건에서 그는 ‘비선’으로 불렸다. ‘노사 화합’을 도모한다는 노정담당 정보경찰은 법이 개입하는 공적 영역과 은밀한 사적 영역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했다. 김 사장은 삼성의 노조 파괴 배후로 지목된 강경훈(경찰대 2기) 삼성전자 부사장과 노정정보관들의 정기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검찰은 모임의 성격을 의심했지만, 그는 “제가 술 한잔 생각나면 모이는 지인들”이라며 ‘비즈니스’가 아닌 ‘친목’ 모임임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교섭 갈등에 개입한 것은 “공무”라 주장했다. “경찰관은 사회안정 해결이 기본 의무다. 노사 양쪽의 개입 요청, 사회 불안 요소 상존의 두가지 요건이 충족될 때 관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한민국 그 어떤 법 조항도 경찰에 쟁의행위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합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정리할 법적 권능을 주지는 않았다. 공직의 경계를 뛰어넘어 ‘쌍용차 해결사’이자 ‘김 사장’ ‘비선’으로 활동한 그에게 검찰은 책임을 묻지 않았다. 비위 행동이자 일탈이더라도 권한 없는 행동을 한 것만으로는 기소하기 어려웠단다.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법령’에 정보관의 역할은 치안정보업무 기획부터 지도·조정 등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다. 결국 검찰은 김 사장을 2013~2017년 삼성전자서비스 쪽에 유리하도록 교섭에 개입한 대가로 뇌물 6100여만원을 수수한 혐의로만 기소했다. 법원은 김씨의 뇌물 혐의에 대한 유무죄 여부를 가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노동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맺은 인맥을 활용해 정보경찰이 사쪽을 대리해 노사협상을 진행해온 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양 넘길 것인가?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이 문제를 따졌지만 아직 별다른 반응이 없다. 경찰청의 태도도 안일하다. ‘김 사장’이 속했던 경찰청 정보국 간부는 검찰 조사에서 “블라인드 교섭에 경찰이 참여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고, 김 사장이 ‘핫라인’으로 노조와 연락한 것을 두고도 “몰랐다,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조직적 개입이 아니라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얘기다. 지금도 경찰 내부엔 수많은 정보경찰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퇴임한 선배의 노하우를 이어받아 ‘김 사장’이나 ‘비선’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누구든 답을 내놔야 하지 않겠나.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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