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8 17:18
수정 : 2019.06.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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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석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이 1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최근 경제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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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초년생 시절 흥미 있는 주제를 향해 질주하듯 취재해 들어가다 보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는 핀잔을 듣곤 했다. 기자란 모름지기 전체 이슈의 지형을 넓게 조망해야 한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도 숲 대신 나무에 정신이 팔리곤 하지만 최근 쏟아지는 경제 뉴스 가운데는 우려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최근엔 ‘재정동향 6월호’를 놓고 벌어진 재정수지 적자 논란이 대표적이다. 보수 언론은 지난 1~4월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가 각각 25조9천억원, 38조8천억원 적자를 기록했다는 숫자를 앞세우며 나라 살림에 구멍이 뚫렸다고 비판했다. 몇년간 계속된 세수 호황이 저물어가는데, 이 정부는 손쉬운 재정 확대에만 열을 올린다는 듯 비장한 어조였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재정 운용의 현황을 도외시한 ‘공포 마케팅’에 가깝다. 정부는 부진한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상반기에만 연간 재정의 60% 이상을 집행하기로 하고 연초부터 과감하게 돈을 풀었다. 나라 살림에 큰 문제라도 벌어진 듯 묘사된 (단기) 재정수지 악화는, 이 과정에서 앞으로 밑지고 뒤로 남는 세입과 세출의 미스 매칭일 뿐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재정증권 액수를 보면, 이런 사정이 좀 더 잘 드러난다. 정부가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한은을 통해 발행한 재정증권 총액은 31조3천억원(5월 말 기준)에 이른다. 재정증권은 말 그대로 ‘일시적으로’ 부족한 재정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단기 국채로 늦어도 두달 안에 상환해야 한다. 그래서 절반 이상은 이미 갚았고 발행 잔액은 15조3천억원만 남아 있다. 경기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나랏돈을 앞당겨 푸는 과정에 ‘마이너스 통장’을 융통한 셈이다.
이를 두고 재정건전성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하는 것은 ‘플로’와 ‘스톡’ 개념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된다. 마치 경주마처럼 앞뒤 분간하지 않고 단기 지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할 때 생기는 오류다.
대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재정의 관리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이다. 먼저 올해 당장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지 따져보자. 어차피 올해 정부 지출은 지난해 국회 심의를 통과한 2019년도 본예산과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미세먼지 추경안’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재정건전론자들이 우려하는 예상치 못한 대규모 재정수지 적자는 올해 세수가 본예산에 담긴 세입 예산에 크게 못 미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그런데 재정동향에 공개된 1~4월 국세수입은 109조4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9조8천억원)과 비슷하다. 올해 전체 세입 예산(294조8천억원)도 지난해 국세총수입(293조6천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적 대비 세수 진도율을 따져보면, 현 추세가 계속되는 이상 세입 예산에 근접하는 국세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예상치 못한 재정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며, 재정이 관리가능한 범위 안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그에 따른 복지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예정이다. 더구나 복지예산은 한번 늘리면 다시 줄이기 힘든 의무 지출의 성격을 띤다. 장기적으로 국가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일시적인 지출은 국가채무로 감당할 수 있지만, 고정 지출은 그에 해당하는 세입 대책을 마련하는 게 지속가능한 재정의 원칙이다. 지난해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된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의 규모는 점차 커져 2022년엔 한해 63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때면 이 정부 임기도 끝난다고? 그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재정에 대한 어설픈 ‘공포 마케팅’의 진짜 문제는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을 주문하는 문재인 정부조차 ‘표에 도움 될 리 없는’ 증세 논의는 입 밖으로 내지 않도록 만드는 것 말이다.
노현웅
경제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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