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6 17:48
수정 : 2019.06.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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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민 지지하는 타이페이 학생들타이페이 대학생과 시민들이 16일 타이페이에서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타이페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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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보며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느낀다.” “마음을 다해 홍콩인들을 응원하고 있다.”
홍콩의 상황을 숨죽여 지켜본 중국의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전해온 소식들이다. 친중파 홍콩 정부가 추진한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해 홍콩인 703만명 중 103만명이 시위에 나섰고 결국 입법 보류를 이끌어낸 소식은 삼엄한 ‘검열 만리장성’을 뚫고 중국으로 전해지며 희망의 작은 불씨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 당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홍콩 행정수반 캐리 람 행정장관이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입법 보류를 발표한 것은, 2012년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 당국이 여론 앞에서 한발 물러선 사건으로 기록됐다. 16일에도 홍콩 시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법안의 완전 철회와 람 행정장관의 사임, 강경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다시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시위에 나섰다.
저항의 이면에는 중국의 홍콩 정책이 홍콩인들의 민심을 존중하지 않고 점점 더 강압적으로 변한 데 대한 분노와 공포가 있다. 2014년 홍콩인들은 행정장관 직선제가 ‘중국 정부가 승인한 후보들만의 선거’로 변질된 데 항의해 79일간 ‘우산혁명’ 시위에 나섰다. 2015년에는 중국 당국에 비판적인 책들을 판매한 홍콩 서점 주인 5명이 갑자기 중국으로 끌려가 구금됐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라도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는 범죄인 인도 조례 입법이 강행되자, 홍콩인들은 이번이 홍콩을 지킬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일어섰다.
한국에서도 홍콩인들의 이번 시위에 대한 공감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무더위 속에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서는 홍콩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5·18광주민주항쟁과 6월항쟁을 떠올렸다.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밝힌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은 아시아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교류하고 연대하며 ‘마음의 다리’를 만들어냈음을 깨닫게 했다.
아울러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이번 시위에 쏟아진 높은 관심의 이면에는 ‘강해진 중국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중국은 자신감에 가득찬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위기감과 불안의 그림자도 짙어 보인다. 안정을 명분으로 감시카메라와 빅데이터를 이용한 ‘빅브러더’ 사회가 만들어졌고, 100만명 넘는 위구르인들이 ‘재교육 캠프’에 갇혀 있다고 유엔이 발표했으며, 인권운동가, 변호사, 독립적 노조를 세우려 했던 노동자들과 이들을 도우려던 대학생들이 구금되거나 실종됐다.
중국 주변에서는 ‘중국의 길’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높아졌다. 한국에서는 사드 사태까지 더해져 반중 정서가 굳건히 자리잡았다. 중국과 공존하려는 이들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미-중 무역전쟁이 기술과 금융, 군사 분야로 확산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국 보수세력들은 한국 정부가 어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 등 ‘분명한 선택’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콩의 이번 시위를 ‘우월한 서구식 민주와 후진적 중국’의 이분법이나 ‘반중’의 틀로만 보는 것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오랫동안 더 나은 중국과 홍콩의 미래를 위해 분투해왔다. 홍콩인들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영국의 식민통치에 맞서 노동운동과 시민 권리 운동을 계속했다. 홍콩인들은 1989년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대륙의 시위대를 지원하는 활동에 힘을 다했고, 이후에도 중국 대륙에서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를 지원해왔다.
중국 당국의 이번 ‘타협’ 결정에는 미국과의 무역·기술 전쟁이 격렬한 가운데 전세계가 주시하는 홍콩 시위를 강경 진압할 경우의 후폭풍에 대한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국제적 연대와 공감이 홍콩인들의 ‘승리’에 힘을 보태고 중국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듯, 서로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끊임없는 이해와 연대가 아시아의 미래에 의미있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홍콩인’이다.
박민희
통일외교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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