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14 18:04
수정 : 2017.11.14 19:20
허호준
호남제주팀장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김경배(50)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포클레인 기사였다. 20대 중반부터 포클레인 기사로 생활하며 터전을 일궜다. 난산리는 중산간 마을이다.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제주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개발 바람이 조금은 비껴간 곳이다. 그는 노동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포클레인 기사로 돈을 모아 고향에 집을 짓고 여든다섯 된 어머니와 살고 있다. 그는 25년 동안 포클레인 기사 생활을 하면서 틈날 때마다 집 마당에 ‘제주섬’을 담았다. 성산 일출봉을 만들고, 해안을 형상화했다. 그의 땀과 애정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집 마당이다.
국토부와 제주도가 2015년 11월10일 성산읍 난산, 신산, 온평리 일대를 제주 제2공항 후보지로 선정했다. 후보지 선정은 일방적이었고, 발표는 느닷없었다. 주변 지역 토지주나 외지 투기꾼들은 쾌재를 불렀지만, 대대로 마을에 살면서 농사밖에 모르던 주민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김경배씨도 그들 중 한명이다. 포클레인 기사여서 공항을 건설하느라 일감이 많아져 이득을 볼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지만, 분신과 같은 포클레인을 팔아치웠다.
그때부터 그는 청와대 앞에서 제주도청 앞까지 1인시위에 나섰다. 지난해 설 명절에는 청와대 앞에서 차례를 지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도 그는 온종일 꿋꿋하게 ‘제2공항 반대’ 손팻말을 들었다. 공무원과도 많이 싸웠지만, 그의 결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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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며 제주도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경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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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제주도청 앞에서 지난달 10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14일로 36일째를 맞았다. 이런 방식이 아니고는 국토부와 제주도를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식투쟁 이유에 대해 “삶의 터전이자 생명인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를 포함한 주민들의 단식투쟁과 천막농성은 지난 9월 하순 제주도가 제2공항 건설 ‘찬성’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토부에 제2공항 건설의 조속 추진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주민과 대화를 계속하겠다면서 한쪽에서는 조속 추진을 요청한 것이다.
한 달 넘게 단식하면서 건강상태가 나빠지자, 이를 우려한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지난 9일 천막농성장을 방문해 김씨에게 단식 중단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강 주교는 “국책사업을 주민 입장도 듣기 전에 일방적으로 결정한 상태에서 설득하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 주민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의 단식은 지난 13일 원희룡 제주지사와 제2공항 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대책위)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민들이 ‘부실 용역’이라며 검증을 요구해온 ‘(공항 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용역’ 검증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분리하고, 검증 결과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면 기본계획 수립 용역 발주를 중단하는 안을 제주도가 받아들여 국토부에 요청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제2공항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사전 타당성 용역 검증 결과에 대해 대책위와 제주도, 국토부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정한 검증이 돼야 한다.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또 다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하자의 중대성이 어느 정도인지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그의 지인은 “처음엔 경배씨가 집 마당을 지키겠다는 소박한 투쟁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개발의 문제, 제주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제2공항 문제와 관련해 ‘사업 추진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와 ‘지역주민과 상생 방안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경배씨는 국토부의 답변이 올 때까지 단식을 계속한다고 한다.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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