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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0 18:30 수정 : 2017.10.10 19:07

이본영
국제뉴스팀장

10년 전인 2007년 미얀마 양곤 민주화 요구 시위 현장을 취재했다. 이미 며칠간 수십명이 총탄에 쓰러졌는데 장갑차 앞에 선 남자들도 모두 좁고 긴 치마 같은 전통복장을 입고 슬리퍼 비슷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무리 날랜들 총알보다 빠르지 못한데, 저래서는 도망이나 치겠나 싶었다. 두 번째로 묵은 호텔에서 또 답답함을 느꼈다. 길 건너가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의 집이었다. 입구에 기관총까지 걸렸으니 접근은 언감생심이었다. 유폐된 가녀린 여인의 처지는 이 나라의 기약하기 어려운 미래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후 미얀마는 기적처럼 민주화의 도정에 서고 수치는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이제 그를 응원하던 외부인들한테 손가락질을 받는다. 정부군의 소탕전이 개시된 8월 말 이래 50만명의 로힝야족 난민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로 도피하다 배가 가라앉아 익사하는 로힝야족 얘기가 계속 외신을 탄다. 수치 입장에서는 권력의 주요 축인 군부가 탄압을 주도한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래도 ‘인종청소 같은 것은 없고, 정당한 법집행일 뿐’이라는 식의 태도는 실망스러울 뿐이다. 이토록 유명한 영웅이 순식간에 비난 대상으로 전락한 사례는 드물다.

수치의 추락 배경에는 ‘탈식민 증후군’이 이중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선 로힝야족은 영국의 식민통치 때 집단적으로 미얀마로 이주한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제국주의의 이이제이 술책과, 한국의 38선처럼 함부로 그은 경계는 식민지시대가 끝난 뒤에도 약소민족들에게 다대한 고통을 안겨줬다. 이런 대목은 수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들이 보여준 개인적 ‘탈식민 증후군’ 또한 엿보인다는 점이야말로 문제다. 극악한 독재자들과 권력 기반이 아직 불안한 수치를 섣불리 비교하는 게 위험하긴 하다. 하지만 수난의 시기에 형성된 높은 명망을 배경으로 통치자가 된 이들조차 독재의 블랙홀로 빠진 사례가 흔하기에 우려의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탈식민 국가들에서 새 리더십은 저항엘리트였거나, 제국주의의 유산을 쉽게 흡수한 하급 군인인 경우 등이 있었다. 수치의 아버지는 민족 영웅이지만 독립 직전에 암살당한 아웅산 장군이다. 따지고 보면 수치는 유예기간을 거친 탈식민 지도자다.

한국의 경우 이승만·박정희·김일성처럼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 ‘탈식민 증후군’의 상처를 남겼다. ‘헌법 쿠데타’를 애용하며 절대권력과 영구집권에 집착한 게 이 증후군에 걸린 이들의 병증이다. 한반도 남쪽은 이 증후군의 잔여 바이러스를 지난겨울에 촛불로 태워버렸다.

정치권력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영웅성이나 무결성이 오늘과 내일의 고결함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9일이 50주기였던 체 게바라는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로 갔다가, 다시 새 싸움터로 삼은 볼리비아 밀림에서 삶을 마감한 그를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잔혹한 지도자를 새로운 잔혹한 지도자가 대체할 뿐”이라는 게바라의 말은 통찰과 냉소를 담았다.

경계가 뚜렷한 투쟁의 시대에는 저항세력이 모든 도덕적 아우라를 독점하기 쉽다. 하지만 승리 뒤 권력의 향유에 빠지거나 자기성찰 능력을 상실하면 자기가 몰아낸 추한 권력이 어느새 거울 저편에서 비웃음을 보낸다. 이게 권력의 속성이며, 민주주의 체제에도 상존하는 취약성이며, 우리가 경계를 풀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이 받은 찬사가 상대의 정통성 부족과 극악함 때문에 돋보인 정치적 보색 효과에 너무 기대지는 않았다는 점을 수치 자신이 입증해야 한다.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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