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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18 18:27 수정 : 2017.04.18 18:57

황상철
국제에디터석 기자

고대 그리스의 쇠망을 초래한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은 내전이자 국제전이었다. 아테네 연합군과 스파르타 연합군이 살육전을 벌이던 때,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385년 추정)는 전쟁을 선동하며 휴전과 평화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풍자해 전쟁에 지친 아테네에 웃음을 선사했다. 그의 희극 <리시스트라테>에는 남성들이 전쟁을 끝낼 가망이 없자, 여성들이 나서 남성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섹스 파업’을 하고 파르테논 신전에 쌓인 자금이 전쟁에 쓰이지 못하도록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해 결국 평화를 가져온다는 기발한 생각이 담겼다.

제목이 <평화>인 희극도 있다. 한 포도 재배 농부가 쇠똥구리를 타고 신들이 사는 곳으로 날아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귀신이 지하에 가둔 ‘평화’의 여신을 구한다. 농부는 지상으로 내려와 여신의 시녀였던 ‘풍요’와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 이때 무기 제조·판매상들이 나타나 볼멘소리를 하고, 농부는 이들을 한바탕 골려주고 내쫓은 뒤에야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평화를 갈망한 고대 희극 작가의 눈에도 휴전과 평화를 가로막는 이들은 전쟁으로 권력을 쥐고 돈을 버는 자들이고, 평화의 회복은 섹스 파업이라는 ‘비상조처’를 해야만 할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이 분명했던 듯하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희극이 아닌 비극이다.

지난 7일 새벽 미국 해군 함정이 59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시리아는 다시 국제 뉴스의 전면에 등장했다. 2011년 3월 시작돼 6년 넘게 계속된 시리아 내전은 국제전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이라고 하지만,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격하기 전 러시아에 미리 알려주는 등 짜고 치는 ‘전쟁 쇼’ 냄새가 물씬 난다. 러시아는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다. 한쪽은 정부군에 돈과 무기를 대고, 한쪽은 반군에 돈과 무기를 댄다. 미사일 공격으로 ‘미국의 시리아 정책이 바뀌나’ 하는 물음도 제기됐으나, 변화는 없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12~2016년 세계 무기 수출액에서 미국은 33%, 러시아는 23%를 차지했다. 최대 무기상들이다. 이들이 개입한 이상 시리아의 운명은 시리아인의 손을 떠났다. 시리아가 이슬람 시아파 정부군, 수니파 반정부군, 쿠르드족 지역 등으로 삼분될지, 다시 통합국가가 될지는 미국과 러시아에 달렸다. 32만명이 목숨을 잃고 490만명이 외국으로 탈출한 전쟁의 지속 여부도 마찬가지다.

먼 나라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던 칼빈슨 항모전단이 뱃머리를 돌리고, 북한은 미사일을 계속 쏴댄다.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플로리다의 호화 리조트에서 모종의 합의를 한 듯한데, 한국은 오리무중이다. 대선 후보들은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을 반대한다면서 한국의 ‘합의’ ‘동의’를 요구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자기한테 대들거나 맞짱을 뜬 나라를 존중해온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더 맡아달라고 통사정한 나라의 의견을 그리 존중할 것 같지 않다. 그게 세상사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패악은 남북관계를 팽개쳐 우리를 우리 운명의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는 게 진짜 위기다.

<리시스트라테>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남편한테 잠자리를 허락할 것처럼 애를 태우고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여보, 휴전(평화)에 투표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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