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4.16 19:11
수정 : 2017.04.16 19:21
박병수
선임기자
6·25 전쟁 막바지에 미국은 이승만 정부의 휴전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대신 미국은 한국군의 통제권을 요구했다. 그 결과 1954년 11월 작성된 ‘한-미 합의의사록’에는 “유엔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책임지는 한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권하에 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유엔군사령관은 임명권자가 미국 대통령이니, 한국군은 미군의 작전 통제를 받는 셈이다. 미국의 작전통제권 요구는 이승만 정부의 호전성 때문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미국은 한국군의 돌연한 북진으로 전쟁에 다시 끌려들어갈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 확보는 그 예방책이었다.
50년 넘게 세월이 흐른 뒤 미군 손에 들어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회수하려 했던 건 노무현 정부였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회수를 거부하고 미국에 계속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3년 전 박근혜 정부가 한·미의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추진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런 사실에서 묘한 아이러니 같은 것을 느꼈다. 한국군의 대북 적개심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았다. 정전상태의 현상 유지도 미국의 변함없는 희망사항으로 보였다. 실제 지난 3년간 군을 취재하면서 미군보다 한국군이 훨씬 공세적이고 전투적이라고 느꼈다.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호전적 발언이나 공격적 태도에 우려를 전달했다는 얘기도 듣곤 했다. 그럼에도 남북 대결보다 화해와 평화공존에 더 무게를 두는 진보정권은 호전적인 한국군이 전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 아닌가. 거꾸로 대북 적개심에 사로잡혀 있는 보수정권은 정전체제 유지를 바라는 미군에 전작권을 못 맡겨 안달 아닌가.
그러나 요즘 시끄러웠던 한반도 위기설은 누가 더 호전적이냐에 별 의미를 둘 수 없게 한 것 같다. 미군이 북한을 폭격한다는 위기설의 내용을 보면,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해선 미군의 역할이 공세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긴 미국은 1994년 북핵 위기 때 실제 북폭을 기획했던 선례가 있다. 미국발 전쟁 가능성은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위기설은 정부 당국 등의 적극적 진화로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할수록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립과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변함이 없다.
한반도 긴장 고조는 그 자체로 남북간 군사충돌의 위험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늘 한반도 밖으로 불똥이 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군사적 조처를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미-중 간 군사적 견제와 대결의 맥락에서 읽히면서 이미 한-중 갈등의 최대 난제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 아직 예단하긴 이르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는 분명해 보인다. 1991년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전술핵무기의 재배치가 검토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는 사드 배치에 이어 다시 한번 한-중 관계에 치명타가 될 공산이 크다.
한반도 위기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스멀거리던 북핵 해결의 막연한 기대감이 극적으로 사그라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무력충돌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비쳤다. 새달 9일 대선 결과 출범할 새 정부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suh@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