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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2 19:13 수정 : 2011.02.22 19:13

박주희 지역부문 기자

박주희/지역부문 기자

청소년 공부방 예산이 깎인다는 얘기를 듣고도 무심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취재하기 전까지 공부방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전국에 있는 공부방 10곳 가운데 2곳이 올해 들어 문을 닫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절반씩 내서 전국에 공부방 360여곳을 운영해 왔는데, 정부가 예산을 없애자 많은 공부방들이 운영비가 없어 운영을 포기했다.

공부방은 1980년대부터 이른바 ‘달동네’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집에 공부방이 따로 없거나 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 되는 청소년이 이용료를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태껏 제 몫을 해왔다. 자원봉사를 하는 교사가 있는 곳은 무료 ‘과외’도 한다. 일부 공부방은 운영비를 쪼개 청소년들에게 영화나 공연도 보여주고, 문화활동도 지원한다. 소극적으로 운영되는 공부방은 아이들에게 독서실이고, 좀더 활성화된 곳은 학습과 문화활동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정부의 공부방 예산이 ‘0’원이 됐다. 예산을 줄이는 것도 반발이 심할텐데 어떻게 아예 없앨 수 있었을까. ‘문 닫는 공부방’을 취재해 보니,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성인 대상 시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서로 뭉쳐서 목소리를 낼 줄 모르는 10대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손쉽게 예산을 깎을 수 있었다.

방과후 매일 공부방을 이용했다는 중학생 민정이(가명)는 “12월에 갑자기 공부방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더니 정말 1월부터 문을 닫더라”며 “할 수 없이 30분씩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다닌다”고 했다. 민정이 아버지는 “우리가 문제를 삼는다고 공부방이 다시 문을 열겠느냐”고 되물을 뿐,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민정이는 공부방이 없어진다는 통보만 받았을 뿐 대신 갈 수 있는 대안 공간을 안내받지 못했다. 민정이와 같은 청소년들은 걸어서 오가며 밤늦게까지 머물던 공부방이 갑자기 없어져도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 하는지, 불만을 얘기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스스로 옮겨갈 곳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공부방에 국비 지원을 하던 여성가족부는 장기적으로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바꾸는 게 효율적이라며 아동센터로 전환을 추진한다고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모두 일정 규모와 시설을 갖춘 아동센터에서 돌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아동센터로 전환한 공부방은 전국에서 스무곳이 안 된다. 치밀한 준비 없이 예산부터 깎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공부방이 무더기로 문을 닫았는데도 여성가족부 쪽은 “생각만큼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아동센터와 통합되는 과도기로 봐달라”고 한다. 그 ‘과도기’에 아이들은 공부방을 빼앗겼지만, 책임지는 어른은 없다. 현장에서는 청소년 공부방을 아동센터로 전환하는 데 현실적인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도 안 보인다.

민정이가 다니던 공부방 아래층은 경로당이다. 이 공부방 취재를 간 날, 경로당의 할아버지방과 할머니방에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심심풀이 화투놀이가 한창이었다. 정부가 경로당 예산 지원을 중단해 경로당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 잠시 생각했다. 대신 노인복지회관이 규모도 있고 시설도 좋으니 그쪽으로 가시라고 안내한다면? 정부가 ‘유권자’인 어르신들을 그렇게 푸대접할 리 없겠지만.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이 계약대로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지 않았다며 4대강 공사비가 무더기로 ‘증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증발 논란이 일고 있는 4대강 사업 예산은 1조8000억원이다. 정부가 청소년 공부방 문을 닫으면서 ‘아낀’ 예산은 30억원이 채 안 된다.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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