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30 19:01
수정 : 2011.01.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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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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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축산농민에게 사과했다. “‘도둑 잡을 마음이 없는 집주인’이란 비유는 적절치 못했다”는 취지였다. 짤막한 사과문 한 장을 달랑 냈지만, 윤 장관의 속마음은 ‘(구제역으로 가축을 잃어도) 보상금을 너무 많이 주니까, (농민들이 방역을 게을리하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났고, 그것이 구제역 사태를 키운 중요한 이유’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달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판박이 ‘사고’를 쳤다. 김 본부장은 한 세미나 자리에서 “다방 농민이란 말이 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예산을) 투자했더니, 돈이 엉뚱한 데로 가더라”라는 말을 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농민들이 다방에서 공무원들과 어울리며 정부 보조금을 챙긴다고 비하한 발언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그 뒤 김 본부장의 사과는 찾지 못했다.
‘돈 버는 농업’을 내건 이명박 정부에서, 농업은 대체로 국정 우선순위의 맨 뒤에 처져 있었다. 여러 자유무역협정의 걸림돌이 되고, 어려운 재정을 더 축내는, 그렇다고 단박에 해결 방안도 없는, 그런 거추장스런 존재에 가까웠다.
윤 장관과 김 본부장의 ‘망언’ 또한 말실수가 아니라, 지금 정부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많은 농업 전문가들은, 농업을 돈 못 벌면서 많이 쓰기만 하는 ‘저효율 고비용 산업’으로 인식하는 농업관의 진원지로 이 대통령을 지목한다.
2010년의 화려한 경제성적표(6.1% 성장)가 공개된 지난주에는 농림어업 성장률이 -4.9%라는 끔찍한 결과도 함께 발표됐다. 3분기와 4분기 성적표는 -7.5%와 -6.6%로 더 나빴다. 이 대통령으로선, “내가 해봐서 잘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 농업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쌀 대란, 배추 파동, 구제역 사태와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는 농업 파국을 장관들이 왜 못 잡는지, 많이 답답할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정운천·장태평 전직 장관들은 ‘돈 버는 농업’을 외치면서, 기업농과 수출농업의 전도사 노릇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식량자급 확대와 안정적 농지 확보는 뒷걸음질쳤다. 농지를 줄여 개발에 보태고, 농산물이 모자라면 수입하라는, 농업 외부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따라갔다는 비판을 받는다.
‘구제역 수습 뒤 사퇴’ 의사를 밝힌 유정복 장관은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연이은 ‘파동’과 ‘재앙’을 뒷수습하는 불운을 겪고 있다. 유능하고 신망이 있다 해도, 내년의 총선 출마가 예정돼 있는 단명의 정치인 장관이 위기의 농업을 살려내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3명의 장관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애그플레이션 위기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전세계 흉작의 장기화가 예고되고, 언제라도 헐값에 곡물과 배추, 고기를 수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농림어업의 마이너스 성적표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사실, 그전 정부도 농업 홀대라는 점에서는 별반 나을 게 없었다. 진보를 외치는 정치집단에서, 농업의 현실적인 대안 모색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도 의심스럽다.
다음 집권을 꿈꾼다면, 지금부터라도 식량안보와 안전한 먹거리를 내건, 지속가능한 농업정책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민의 부를 고르게 창출할 수 있는 협동조합을 건강하게 재창출하는 방안도 빼놓을 수 없다. ‘농업장관’은 임기 5년을 함께한다는 공감대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돈 버는 농업’과 같은 반짝 구호는 이제 더이상 각성한 농민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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