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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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시즘’의 비판자 도사카 준(1900~1945)은 1938년 체포돼 일제 패망을 일주일 앞두고 감옥에서 병사했다. 검거되기 전 그는 학자들의 연구모임을 조직해 일본의 군국화·파쇼화에 맞서 사상투쟁을 이끌었다. 그는 반군국주의 문화전선의 총지휘관으로 통했다. 그 시절 ‘상식의 분석’이란 글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상식은 이미 오늘날 지상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상식은 ‘지하실’ 같은 곳에 처박혀, 그 숨통마저 막혀 버린 것 같다.” 문부성 국어조사회가 일본이라는 국호를 ‘니혼’으로 읽지 말고 ‘닛폰’으로 읽어야 한다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 1934년이었는데, 제국 일본의 국호 발음까지 ‘사상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이 몰상식의 시대를 향해 도사카는 ‘질식당한 상식의 고통’을 토로했다. 상식의 철학자였던 도사카는 상식을 사람들이 공통으로 지닌 사회적 판단력이라고 규정했다. 상식이란 대개 모호하고 미숙하고 불철저한 지식이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면, 전문적인 지식보다 폭이 넓고 통찰력이 풍부한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기도 하다. 도사카는 상식의 적극적 측면에 주목해 이 상식을 살려내 키움으로써 시대를 비판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는 언론활동이나 사회비평이 바로 이 상식의 활동 거점이라고 보았다. 도사카의 상식론은 선례가 있었다. 미국 독립혁명에 앞장섰던 토머스 페인(1737~1809)이 도사카보다 먼저 상식의 힘을 설파했다. 식민지 미국과 식민모국 영국 사이 갈등이 깊어지던 1776년 1월 페인은 필라델피아에서 <상식>이라는 이름의 팸플릿을 발간했다. 50쪽짜리 이 얇은 책자는 영국 왕의 지배를 끝장내고 독립을 이루어 민주정체를 세우는 것이 당대의 상식이라고 설득했다. 이 팸플릿이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식민지의 독립을 주장하지 않았다. 페인의 <상식>은 식민지 미국의 공기를 일거에 바꾸어 놓았고, 발간 여섯 달 뒤인 1776년 7월4일 미국인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상식의 힘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다. 이명박 정부 2년의 대한민국 현실을 ‘상식’의 눈으로 돌아보면, 도사카가 묘사했던 ‘숨이 막히는 지하실’이 떠오른다. 상식이 몰상식에 쫓겨 진압당하고 철거당한 것이 지난 2년이었다. 도처에서 몰상식이 상식을 검열하고 체포하고 취조했다. 상식이란 당연한 것, 자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년 동안 이 ‘자명성의 지평’이 깨지고 무너졌다. 민주주의 상식, 인권 상식이 반민주 몰상식, 반인권 몰상식에 숨통을 짓눌렸다. 짓눌리는 상식의 편을 든 법원이 몰상식의 추궁을 받으며 ‘개혁 대상’으로 내몰렸다. 문화예술위원회 두 수장 사태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1차 책임자라 할 문화부 장관은 내 알 바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몰상식이다. 전임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신문·방송이 가혹할 정도로 집요하게 추궁하고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그 시절 벌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었던 조중동 가운데 지금 한 곳이라도 이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고 비판하는 곳이 있는가. 제구실을 못한 지 오래된 <한국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문화방송>마저도 이 몰상식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페인은 <상식>에서 말한다. “그릇된 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오랜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릇된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대로 두면 지난 세월 피로써 얻은 민주주의 상식이 아주 사라질지 모른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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