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26 21:59
수정 : 2010.01.2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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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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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기로 했더니, 나날이 쇼핑 고민이다. 웨딩 촬영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을 이르는 ‘스드메’ 패키지부터 시작해 예물, 예복, 한복, 혼수가전, 폐백음식, 신혼여행 상품 등 결혼을 앞두고 챙겨야 할 쇼핑 목록은 길기도 하다. 밤마다 결혼 준비 카페와 블로그 후기들을 들락거렸더니, 남은 것은 이마의 뾰루지요,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뿐이다.
여하튼 쇼핑 전선에 나서 보니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30여년 실용주의 노선만 걸었던 패션감각은 화려한 레이스와 프릴, 반짝거리는 비즈 장식을 향한 욕구불만을 드러냈다. 스무살 적 금가락지가 전부였던 손가락은 다이아 반지에 대한 열망을 갑작스레 폭발시킨다.
실은 어설픈 눈썰미에 다이아나 큐빅이나 여전히 비슷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제 종로·청담동 보석상에 들어서면 다이아 커팅 등급은 ‘엑설런트 컷’이냐 ‘트리플 엑설런트 컷’이냐를 논하고, 투명도는 ‘브이브이에스원’이냐 ‘에스아이원’이냐 묻는 경지에는 이르게 됐다.
그렇다. 나는 뉴욕의 티파니 쇼윈도 앞에서 아침을 먹던 오드리 헵번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사태에 당황한 이도 있다. 오드리 헵번이 빙의라도 한 듯 예물점을 탐색하는 열정에 누군가는 간이 졸아붙기도 했을 것이다.
소비는 어느 순간 잉여를 즐기는 여가활동이 된 지 오래다.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들이는 과정을 즐기고 이를 사회적 신분 지표로 은연중 믿어버리는 별에서 산다. 아마도 명품·사치품 소비는 이런 씀씀이의 대표 격일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이런 명품·사치품 산업들도 불황 파편을 맞았다. 명품 시계·가방·보석 업계는 미국·유럽을 통틀어 불황이다. 실수요자가 적어진 측면도 있고 사회 전체가 실직·파산에 휘말리다 보니 사치스런 소비 자체가 사회적 제약을 받게 된 영향도 있다. ‘럭셔리 셰임’(luxury shame)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나홀로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게 계면쩍고 ‘손발이 오글오글’ 부끄러워졌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신흥 부자들이 늘어나는 중국과 함께 불황에도 급성장하는 명품 시장으로 꼽힌다. 럭셔리 셰임은 우리 사회에선 아직은 겉도는 정서라는 얘기일 것이고, 소득 격차에 대한 사회적 책임 의식이 상대적으로 옅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럭셔리 셰임은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딱 잘라 선을 긋기는 힘든 가치다. 저마다 크고 작은 사치를 누리는 것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서울시내 노숙자가 몇인데 수천만원짜리 악어백을 사느냐 물을 수 있다면야, 굶주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김밥 대신 꼭 도가니탕을 먹어야겠냐고 대꾸할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처럼 유동적이고도 모호한 정서적 가치가 우리 사회를 좀더 낫게 만든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잉여의 흐름을 성찰하고 소득 격차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럭셔리 셰임을 잊은 부유층이 지갑을 여는 것만으로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하긴 이미 어려운 상황이다.
예물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와중에, 누군가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엔딩 장면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게 뻔히 보인다. 테마곡 문리버가 흐르고 오드리 헵번이 마침내 개심하는 대단원!
그리하여, 럭셔리할 것도 없는 내가 럭셔리 셰임 압박 공작 아래서 예물로 무엇을 살까 하는 것, 그에 대해 어떤 심사를 품었냐 하는 것, 그건 개인 사정상 비밀이다.
정세라 경제부문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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