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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1.19 21:51 수정 : 2010.01.19 21:51

이본영 법조팀장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 대한 1심 무죄선고와 ‘용산사건’ 수사기록 공개를 계기로 한 검찰·보수언론·여당의 법원 때리기 삼중주를 듣노라면, 법원은 머리띠 두른 판사들이 작당해 심심찮게 자의적 판결을 꾸며내는 곳 같다.

재판도 마땅히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대원칙은 그것이 법리적으로 적절한가, 다음으로는 일반의 상식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로부터 비판의 초점이 너무 멀리 이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안에는 분명히 논쟁적 요소가 있다. 보수언론처럼 ‘어쨌든 폭력행위인데 무죄를 선고하는 게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원내정당 대표가 문이 열려 있는 국회 사무총장실로 들어간 것도 죄라며 징역 3년에까지 처할 수 있는 방실침입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행태는 왜 주목받지 않는지 의문이다.

갈등의 시발과 증폭 배경을 이해하려면 두 사안이 그렇게 흥분할 일인지 곱씹어볼 필요도 있다. ‘우리한테 유리한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구속 피고인들에게 수사기록을 보여준 게 잘못됐다면 또 얼마나 잘못된 조처일까. 경위들에게 플래카드를 빼앗기고 악에 받쳐 사무총장실로 들이닥친 군소정당 대표에게 형법의 맛을 보여주는 게 그리 중차대한 정의 실현인가.

이쯤 되면 다른 배경을 의심해볼 만하다. 검찰의 반응은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쏟아지고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짐작이 간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일부 언론은 더 가관이다. 이참에 우리법연구회라는 판사들 연구모임을 재부각시켜 실컷 욕보인다. 두 재판장 중 한 명은 이 모임을 탈퇴했고, 다른 이는 회원이 아니라는데도 막무가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시환 대법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새삼 거론된다. 이들과, 용산사건 항소심 재판장인 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우리법 4인방’으로 언론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매카시즘 광풍의 표적이 된 예술가들인 ‘할리우드 10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법연구회는 진보적이고, 진보는 잘못된 것이고, 결국 우리법연구회는 잘못된 모임이라는 엉터리 순환논법도 사용된다. 촛불사건 재판 개입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일부 언론은 문제제기를 한 판사들 중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많다며 칼날을 그리로 돌렸다. 정당한 비판도 우리법연구회의 냄새가 나면 불문곡직하고 불순한 행동으로 치부된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특정 세력과 조직에 책임지우고 끊임없이 그 이름을 불러내 타자화하는 게 색깔론의 주특기다. 배척 대상은 조직·배후·성향 같은 말들로 한 묶음을 만들어 쳐내려는 기획이다.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을 이끈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정권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좌파로 몰렸었다. 수십만건 중 한두 사건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기민함이야말로 한국 매카시즘의 예민한 촉수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원조 매카시즘도 건드리지 못한 판사들까지 제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사법부에 대한 이들의 향수도 이번 갈등의 본질인지 모른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판사’들을 질타한 고위직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법조비리 사건 때 떡값 수수를 이유로 법복을 벗은 인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국가폭력에 사후승인 도장을 찍고, 가진 자에게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전관예우가 횡행하는 사법부의 옛 모습, 그것이 판사들의 양심을 오그라들게 만들려는 이들의 이상인가.

이본영 법조팀장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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