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14 20:57
수정 : 2010.01.1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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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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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의 그는 달랐다. ‘CEO(최고경영자) 대통령’. 이 한마디로 그는 당당했고 힘겨운 싸움판도 피하지 않았다. 경제를 아는 대통령, 대기업을 경영해본 대통령이라는 선전문구는 여전히 고도성장의 마술에 취해 있던 국민들의 성공(성장)욕구를 채워주기엔 더없이 좋은 무기였다. 도덕적 흠결, 투박한 감성은 뒤로 밀쳐둬도 좋을, 아니 되레 적당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감초쯤으로 여겨졌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그의 입은 정치와 정치인들을 향한 극도의 불신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그랬던 그가 2년 만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주요 장관 자리를 정치인 출신으로 채우며 여의도 챙기기에 나선 건 시작에 불과하다. 효율과 성과를 절대시한다던 그럴듯한 최고경영자식 셈법은 여론몰이와 선전전, 외줄타기와 편가르기를 넘나드는 흔해빠진 정치공학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주요 사안에 대한 판단 근거를 정치적 유불리에서부터 찾는 모습도 뚜렷해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높은 여론 지지율을 등에 업고 이런 증상은 되레 더 강화됐다. 최근 세종시 문제 처리에서 그가 보인 행태는, 누가 뭐래도 그의 변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도 모자람이 없다.
그를 변하게 만든 이유는 뭘까? 취임 첫해부터 숨 고를 여유도 없이 밀어닥친 경제위기의 외풍도 이제 어느덧 이겨냈다는 자신감 때문? 그럴 수도 있을 게다. 대통령 자리가 정치와 사회 모든 영역을 두루두루 보듬어야 한다는 뒤늦은 깨달음의 발로? 그 자체로는 분명 바람직한 모습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떻게 변하느냐다. 어떤 장점을 살리고 어떤 단점을 버리느냐가 결국엔 그의 행보가 평가받는 냉엄한 잣대다. 효율과 성과만을 좇는 ‘경영자’ 대통령이 한계를 지니듯, 모든 문제를 정치공학적으로만 따지는 ‘정치인’ 대통령 또한 결코 바람직한 해답은 아니다.
사실상 그의 마음이 떠나간 뒤, 그의 본무대였던 경제는 온통 뒤죽박죽 꼴이다. 그의 대표작인 ‘747 공약’을 일러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7% 성장은 불가능한 말장난이라 비판했을 때, 그가 들고나온 필살기가 바로 법치와 갈등 조정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에 법치와 갈등 조정이 뿌리내리면, 최소한 성장률을 1%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마법 같은 얘기를 그는 줄곧 입에 달고 다녔다. 오락가락 법치와 갈등만 일으키는 지금의 정치행태는, 그가 애지중지하던 성장률을 지금 이 순간에도 갉아먹고 있지 않을까. 무리한 감세와 대형 개발사업에 뒤따르는 재정 건전성 악화는 대규모 국채발행으로 이어져 당장 금리 상승 압력만 키우는 또다른 재앙이다. 기업의 곶감만 빼먹은 채 임기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최고경영자가 지탄받듯이, ‘먹튀’ 대통령이란 오명을 안겨줄 수 있는 불씨는 곳곳에 수두룩하다.
최고경영자 대통령이란 원래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과정과 미래보다는 으레 성과와 실적에만 매달리기 마련인 경영자형 마인드가 미래와 비전, 소통과 화합의 몸가짐을 뼛속 깊이 익혀야 하는 대통령 자리에 잘 녹아들기 힘든 탓이다. 하지만 단점을 고치지 않고 다른 곳만 기웃거리는 건 더욱 커다란 문제다. 그새 낡아빠진 정치공학에 흠뻑 물들어버린 모습은 그나마 성공신화를 간직한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걸었던 순진한 기대마저 무참히 짓밟는 것이다. 엉뚱한 ‘일탈’이자, 아니 섣부른 ‘외도’인 셈이다. 그를 키워준 경제에도, 새로이 마음을 빼앗아버린 정치에도 전혀 보탬이 안 되는 건 물론이다. 섣부른 외도란 으레 안팎 모두를 망치고, 모두에게 버림받는 법 아니던가.
최우성 금융팀장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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