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12 19:18
수정 : 2010.01.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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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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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이 감행한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세계 제일의 전략적 요충지인 아라비아반도 주변을 아노미 상태로 몰아넣는 대재앙으로 변하고 있다.
첫째,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은 요원한 가운데 그 전선은 파키스탄에 이어 예멘과 소말리아로 번지는 상황이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벌어지는 아프팍 전쟁은 걸프만 입구의 전략적 통제권은 물론이고, 미국과 서방의 중앙아시아 지역 접근을 사실상 봉쇄한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일어난 미국 여객기 테러기도 사건으로 전쟁의 물결이 몰아치는 예멘과 소말리아의 상황은 이 두 나라를 사이에 둔 아덴만의 안보도 심각히 위협하고 있다. 아라비아반도의 병목지인 걸프 지역과 아덴만 지역 모두가 전쟁의 파고에 휩싸이는 상황은 세계의 에너지와 물류 안보를 백척간두에 몰아넣을 것이다.
둘째, 테러와의 전쟁은 이 지역의 현지 정권들을 모두 붕괴시켜, 알카에다 등 국제 테러 네트워크의 온상지로 만들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뒤 들어선 아프간,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이라크 정권은 자립적인 통치능력이 사실상 전무한 유사 정권일 뿐이다. 이 나라들의 과거 정권들은 미국에 우호적이지는 않았으나, 이 정도로 미국과 서방의 안보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버넌스와 현지 장악 능력이 있었던 과거 정권이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서 미국의 침공과 사주 등으로 무너지거나 축출되면서, 파키스탄과 소말리아까지 이어지는 지역은 거대한 힘의 공백 지대가 됐다. 국제 테러 네트워크의 온상지로 변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실패한 국가’ ‘실패한 정부’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모두가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셋째, 핵 비확산 체제도 무너지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과 파키스탄의 의심스런 핵무기 관리 능력은 국제 테러 네트워크의 핵무기 확보 시도와 맞물리고 있다.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개발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미 북한의 핵개발 노력으로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비확산 체제는 올해 안에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결정적인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더 큰 변수는 이 지역 무슬림 국가들의 인구변화이다. 이 지역 무슬림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인구변화를 겪고 있다. 방글라데시, 이집트,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터키는 1950년 2억4200만명의 인구를 가졌으나, 2009년에는 8억8600만명으로 무려 세배나 늘었다. 2050년까지 4억7500만명이 더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포린 어페어스> 최근호는 ‘새로운 인구폭탄’이라는 글에서 이 지역 무슬림 국가들의 이런 역동적인 인구증가는 서방과 동북아시아 국가의 고령화와 맞물려 21세기의 재앙이 되거나 축복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테러와의 전쟁이 초래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이 무슬림 국가들의 역동적인 인구층 에너지가 어디로 폭발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이미 소말리아와 예멘에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출신의 무장대원들까지 넘쳐나고 있다. 폭발하는 무슬림 인구는 과거 로마제국에 가한 게르만족의 압력과 같은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를 폐기하며 봉합하려 하나, 이 전쟁은 이미 무슬림들의 ‘미국과의 전쟁’으로 변화했다. 지금 미국과 서방의 공항에서 벌어지는 보안점검 소동과 테러 히스테리는 미국이 이 전쟁의 수렁에 점점 깊게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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