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05 20:58
수정 : 2010.01.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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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석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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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푸르죽죽 빛나는 밤의 무대. 그 빛무리 속에 광화문 터줏대감인 ‘구리 이순신’은 마냥 서 있었다. 코앞에 네온 날개와 네온 노를 휘젓는 거장 백남준의 ‘프랙털 거북선’이 꿈틀거렸다. 바로 뒤춤엔 미디어아트 전시실인 빛의 방이 막아섰다. 전화기, 박제 거북, 자동차 문짝 등으로 만든 폐품 거북선은 ‘역사의 빛’이란 별칭을 차고서, 유리상자 속에서 광화문 네거리를 내려다본다. 미디어 영상탑 사이에 앉은 황금빛 세종대왕, 불탄 숭례문을 등에 짊어진 초콜릿빛 해치, 스케이트장, 밤하늘로 빛살을 내쏘는 서치라이트의 춤….
새해 벽두 국가상징거리인 서울 세종로와 태평로는 화려한 빛 잔치로 흥청거렸다. 핵심인 광화문광장, 시청 앞 서울광장은 세밑부터 빛 물결을 보려는 사람 물결로 출렁거렸다. 혹한도 폭설도 프랙털 거북선, 해치광장, 스케이트장으로 향하는 인파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8월 광화문광장 개설 이래 두 달이 못 되는 사이 이들 거리의 풍경은 어지러울 정도로 천변만화했다. 광화문광장 북쪽 꽃밭(플라워가든)은 12월 초 34m 높이의 스키점프대가 광화문 코앞에 설치됐다가 말쑥한 은빛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다. 12·23분수 물이 치솟던 충무공 동상 앞은 눈 깜짝할 사이에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빌려온 프랙털 거북선이 앉았고, 앞에는 사랑의 행복온도탑이 들어섰다. 양옆 세종문화회관과 케이티 본사는 미디어아트를 벽면에 투사하는 캔버스가 됐다. 서울광장도 옛 시청사 벽면이 디지털 영상 브라운관으로, 12마리 해치상과 남극 세종기지 체험장, 대공 서치라이트 조명을 내쏘는 테마공원으로 변했다. 의연한 건 광장을 내려다보는 청와대의 진산(鎭山) 백악산과 복원중인 광화문의 윤곽뿐이다. 천하의 백남준도 작품 놓인 풍경이 잡탕이 되면 함께 섞여 키치가 되고 시시덕거리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새해 벽두 서울 도심 광장과 거리는 빛의 광장, 빛의 잔치라는 이름을 지닌 거대한 놀이공원이었다. 혹한 속에서도 그 공간 위에 일렁거리는 시각적 소비의 뜨거운 욕망은 운영자, 이용객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감수성이자, 호기심 거리를 찾아 일정 시간 머물며 눈의 쾌락을 즐기는 유희공간 특유의 속성이다. 기실 대로·광장의 테마공원화는 나름 국가 대로에 어렸던 음울한 과거를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다. 나무를 코르셋처럼 포박하고 매단 방울 등이 밝히는 세종로의 예쁘장한 풍경은 70여년 전 나라를 빼앗긴 경성 지식인들이 처연하게 바라보거나 외면했던 광화문, 황토마루(세종로)의 풍경과 다르다.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의 하루>에서 “그 멋없이 넓고 쓸쓸한 길을 아무렇게 걸어”가며 실연녀를 생각했던 주인공 구보나 광화문통을 걷는 자신의 그림자를 꾹꾹 눌러 뭉개려 했던 실직자(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의 뒤안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서울 도심의 국가상징거리의 풍경은 역사·문화가 의미를 재생산하는 이야기의 ‘장소’인 대신 일정 기간 잠시 머물며 시각적 쾌감을 느끼는 공간에 가깝다는 진실 또한 일러준다. 광장 스케이트장에 모여든 관객들은 스스로 홀로 즐겁다. 세파에 눌려 기갈난 대중은 임시 놀이시설물에서 시대의 비루해진 꿈과 환상을 소비하느라 여념이 없을 뿐이다. “마땅히 싸게 놀 데가 없어서 이러는 거지” 40대 회사원 가장이 툭 던지듯 독백한다.
19세기 파리의 상가 아케이드를 관찰했던 미학자 베냐민의 통찰처럼 근현대 도시 공간은 내용물을 대중의 환상과 꿈으로 포장한다. 새해 벽두 서울의 국가상징거리는 생존과 효용 가치에 목매단 이 시대 대한민국을 포장한 아케이드다. 박물관이다.
노형석 대중문화팀장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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