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4 21:51
수정 : 2009.12.2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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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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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가 받긴 받은 거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미리 일러두는데, 나는 모른다. 그것을 알면 미아리나 팔공산 갓바위 밑에 돗자리 깔고 앉아도 될 일이다. 좀더 합리적인 질문은 “한 전 총리가 받았는지, 당신 생각은 어떠냐”이다. 좀 편한 질문 같아도, 하나뿐인 진실을 모르는데 짐작을 말하라니 역시 난감한 구석이 있다. 진실은 이제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고도 한다. 재판의 메커니즘과 진실 발견의 한계를 이해하는 쪽에서 보면 순진한 말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것은 공격과 수비 중 어느 쪽이 잘 싸웠느냐를 말해줄 뿐 진실이 승리했다고 선언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살인과 뇌물 사건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는 판사들이 있다. 둘 다 유죄 판단이 서면 높은 처단형을 선고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건일수록 확신이 안 서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는 것이다. 범행은 은밀히 이뤄지고, 피고인의 부인 강도도 세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의 주장처럼, 증인과 피고인의 주장이 일대일로 대립할 경우 죄를 물을 수 없게 하는 것도 간단한 해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뇌물 사건에서 이런 식으로라면 빠져나갈 이가 한둘이 아니어서, 법원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나 ‘진술의 신빙성’이라는 얼마간 추상적인 잣대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자.
한쪽 변을 보자. 곽영욱 전 사장은 자신에게 뇌물공여죄가 추가될 수 있는데도 5만달러를 줬다고 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지 않는가. 어떤 궁한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일국의 총리를 지냈고 친분이 있는 인사를 완벽하게 모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총리공관 오찬은 공기업 사장 선임을 갈망하던 곽 전 사장을 위한 자리였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억울한 사람은 자신에게 죄를 씌우는 사람 앞에서는 강하게 반박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 앞에서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정치인은 혐의를 인정하면 ‘정치생명’이 끝나기에 일단 부인하는 경향이 있다. 검찰이 미덥지 않다지만, 없는 것을 지어냈다는 상상은 지나친 것 같다.
다른 쪽 변도 꽉 찬다. 곽 전 사장은 오찬 자리가 파하고 맨 뒤에 나오면서 100달러짜리 500장을 건넸다는데, 그렇더라도 시중드는 사람들도 오가는 공관 안에서 거북스런 장면 같다. 도덕성을 내세운 한 전 총리는 추문에 휩싸인 적이 없었다. “천만번을 다시 물어도 절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법정관리회사에서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노회한 인상의 사업가의 말과 무게가 다르다고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대어’의 이름을 불면 편해지기 때문에 거짓되거나 과장된 진술을 하는 피의자도 있다고 한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이 그간 전 정권 인사들을 옭아매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것을 생각하면 께름칙하다.
결론은 거듭 헷갈린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두 사람을 빼고는 지금 누구도 완벽한 진실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는 둘 중 부정확한 기억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심판은 내려져야 하며, 그때 가서도 진실은 여전히 어두운 곳에 있을 수 있다.
한 전 총리는 검찰 조사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느니 차라리 말을 말자고 마음먹었던 것일까. 아니면 ‘신은 진실을 알지만, 기다린다’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떠올리며 치욕을 감내했던 것일까.
이본영 사회부문 법조팀장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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