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10 21:53
수정 : 2009.09.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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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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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년간의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린 일본 민주당은 이제 진보적 야당이 정권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보여줬다.
민주당의 제일 승인은 자민당이 비난하던 ‘선심공약’이다. ‘중학졸업까지 1인당 월 2만6천엔 지급’ ‘공립고교 수업료 무상화’ ‘사립고생 12만엔 지급(저소득세대는 24만엔 지급)’ ‘고속도로 무료화’ ‘중기 법인세율 18%에서 11%로 인하’ ‘직업훈련자 월 10만엔 지급’ ‘주요농산물에 호별소득보상제’ ‘최저보장연금 월 7만엔 이상 지급’ ‘출산일시금, 현행 42만엔에서 55만엔으로 인상’ 등을 내건 정권 공약인 매니페스토를 발표했다. 서민 대중을 겨냥한 직접 지원 확대였다.
자민당은 무책임하다며, 선심공약이란 비판을 퍼부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매니페스토에 대한 관심만 불러일으켰다. 민주당의 매니페스토는 발표되자마자 100만장이 금세 동이나, 추가로 200만장을 새로 발행했다. 자민당도 3~5살 유아교육 무료화 등 지원책을 강화하는 매니페스토를 뒤늦게 내놓았다. 민주당의 공약은 선심공약이란 비판을 받을 만하다. 결과적으로 선심공약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번 민주당 매니페스토의 본질은 1990년대 이후 달라진 사회·경제 체제의 반영이다.
일본 총선은 보수적 여당과 진보적 야당이 맞붙는 과거 선거 구도가 아니었다. 이런 구도에서는 진보적 야당은 ‘개혁’ ‘양극화 해소’ 혹은 ‘민주화’라는 추상적 거대담론을 내걸고, 바람몰이 선거운동을 했다. 반면 보수적 여당은 선거구민들의 일상 이익을 챙기는 미시공약을 내걸고, 선거구 저변을 파고드는 발품 선거운동을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민주당은 거대담론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서민대중의 고단한 일상생활을 겨냥한 생활공약을 내걸었다. 대도시가 중심인 바람몰이 선거운동을 접었다. 대신 ‘3만가구 방문과 5만번의 거리연설’이라는 발품 선거운동을 했다.
이는 언뜻 보면 과거 자민당의 선거운동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본질이 다르다. 60~70년대 고도성장은 자민당으로 하여금 대기업과 상류층의 몫도 키우면서 중·하류층에게도 분배가 될 수 있게 했다. 위에서부터 부가 흘러내리는 ‘트리클 다운’ 효과가 가능했다. 하지만 9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은 자민당의 뿌리를 뽑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자민당 정부가 구조개혁 노선 5년 만에 일본은 ‘1억 총중류화’가 아니라 ‘프리터’와 ‘워킹푸어’ ‘파견사원’의 나라가 됐다.
민주당의 ‘선심공약’이란 그런 프리터, 워킹푸어, 파견사원에 지원을 강화해 분배의 몫을 늘려, 이들의 확장된 구매력으로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대기업과 토건족들만의 먹이가 된 토목건설, 즉 삽질경제에 들어가는 재원을 중·하류층의 복지로 돌리자는 것이다. 일본 서민 대중은 이를 선택했다.
일본 민주당이 한국 야당에 주는 해답은 명확하다. 첫째, 보수와 여당이 입에 거품을 물고 선심공약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하는 공약을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재원이라면 일본 민주당에 못지않은 주거, 일자리, 교육에 관해 ‘선심공약’을 만들 수 있다. 보수진영의 선심공약, 포퓰리즘 프레임을 깨야 한다.
둘째, 바람몰이가 아니라 발품을 팔아야 한다. 서민 대중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정책으로 더 멀어져가는 내집 마련 기회, 줄어드는 일자리, 폭등하는 사교육비 앞에 서민 대중이 무엇을 듣고 싶어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은가?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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