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27 21:10
수정 : 2009.08.27 21:10
|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온 북한의 조문단이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 면담 의사를 밝히자, 청와대 당국자는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평했다. 남북관계의 구도가 바뀌었다는 뜻 정도가 되겠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배짱을 부리던 북한이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압박에 무릎을 꿇고, 대화와 타협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점을 15년 전 이맘때 1994년 여름으로 돌려보자.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어수선한 지금처럼 당시는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으로 혼란스러웠다. 그에 앞서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해, 북핵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얼마 전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한 상황과 비슷했다. 미국의 북폭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직접협상의 물꼬를 트며 북핵 위기는 수그러들었다. 이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체포됐던 미국 기자들의 석방을 이끌어내면서 북-미 접촉이 본격화되는 상황과 비슷하다.
하지만 김일성 사망으로 당시 상황은 돌변했다. 남북 정상회담의 무산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김영삼 당시 정부는 남북관계의 모든 것을 걷어차 버렸다. 당시 야당 의원이 남북관계를 위해 정부 차원의 조문을 제기한 것이 빌미였다. “(한국전쟁) 전범에게 웬 조문이냐”며 광풍이 불었다.
정부는 조문 운운하거나, 조문을 준비하는 사람들조차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섰다. 미국 영주권자인 박보희 당시 <세계일보> 사장이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채 북한에 가 조문했다.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각하’라는 뜻의 ‘히즈 엑설런시’ 혹은 ‘유어 하이니스’라고 불렀다고 보수언론들은 거품을 물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도 북한 붕괴론으로 다시 선회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향후 정상회담의 상대로도 격이 안 맞는다는 주장도 흘러나왔다. 당시는 100년 만의 더위였으나,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김영삼 정부가 오기를 부리는 동안 북-미는 제네바 합의를 타결짓고 남쪽에 경수로 건설 비용 등만을 전가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한 축으로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인 것으로 복기된다. 남쪽이 김일성 사망에 비이성적으로 대처하며 이를 걷어차자, 북쪽은 마치 잘됐다는 듯이 미국과 같이 질주했다. ‘통미봉남’이란 말도 이때 나왔다.
클린턴의 방북 이후 북한은 남쪽에 대한 태도를 갑자기 바꾸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 조문단을 보냈다. 이것이 과연 이명박 정부의 압박에 굴복한 ‘패러다임 시프트’일까? 북한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끼워주기 선물로 내놓는 것은 오래된 전략이다.
이명박 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북한에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결코 한국을 소외시킨 북-미 관계 진척은 있을 수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모양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유고 일기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형식적으로 복귀하되, 북한과 미국은 직접협상으로 문제를 타결지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북한이 제의한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을 거절했지만, 그 본질은 대화와 협상의 형식을 줄다리기하는 것이다. 서로의 체면을 살리는 대화 형식을 찾는다면, 이후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북한을 진정 패러다임 시프트 시키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도 패러다임 시프트 돼야 한다. 압박으로 북한이 무릎을 꿇었다거나, 압박을 계속해야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것은 김영삼 정부의 오기만큼이나 위험한 이명박 정부의 착각이다.
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gil@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