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16 21:09
수정 : 2009.06.1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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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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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29일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이 통과됐다. 2007년 7월부터는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하면 2년 뒤에 정규직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 9명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며 발언대를 점거했을 뿐, 여야 압도적 다수의 찬성을 받았다. 노동부는 이날 오후 비정규직법이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7월에는 노동부 장관이 나서서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우리은행 종로지점은 금융권 최초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뉴스를 타고 있었는데, 이곳을 방문한 공무원들은 시루떡을 차려놓고 기념식을 연 뒤 거리로 나가 부채와 볼펜을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부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차별 없는 일터 비정규직보호법이 만들어 나갑니다.”
정부는 앞장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대책을 세우고, 7만여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차례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 전환을 시행한 ‘모범 민간기업’ 목록도 틈나는 대로 발표했다. 이런 정부의 솔선수범 신호가 약발이 먹혔는지, 대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 대열이 불어났다. 지난해 9월 노동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신세계백화점, 현대자동차, 서울대병원, 하나은행 등 친숙한 대기업 50여곳이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그런데 노동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자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섰고,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대통령이 유난히 고용 유연성을 강조하는 변화가 생기긴 했다. 하지만 태도 변화는 너무 극적이었다. 모든 ‘전향’에는 이유가 있을진대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오는 7월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될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계약 해지 당할 것이라는 ‘해고 대란’ 시나리오를 내놓긴 했지만, 그렇다면 2년 전에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가? 이제 노동부는 그토록 열심이던 정규직 전환 모범 사례도 발표하지 않았다.
비정규직법 통과 직후 정부가 보낸 신호를 보고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에 나섰듯이, 이번에도 정부의 법 개정 신호에 따라 기업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밌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지난해 5월 노동부가 100인 이상 사업장을 조사했는데, 정규직 전환 계획이 있다는 기업은 응답자 가운데 64.9%였다. 그해 9월 100인 미만 사업장 조사에서도 66.5%가 정규직 전환 의사를 밝혔다. 적어도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주들은 여러 설문조사에서 60%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244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기업은 29.9%뿐이었다. ‘정규직 전환 규모를 정하지 않았다’는 14.8%를 더해도 정규직 전환율은 44.8%에 지나지 않는다(‘절반 이상 해고하겠다’는 55.3%였다). 통계 설계가 다르지만,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공기업인 <한국방송>은 7월 만료되는 연봉계약직 270여명의 계약 해지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선호하기 시작해,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가 지난해에 견줘 18만6000명 늘었다.
정부의 정책 신호는 이래서 중요하다. 정부가 비정규직법 개정에 매달린 사이 시장은 이미 개정 신호대로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이미 혼란스러워한다. 노동자들은 불안해한다.
남종영 사회정책팀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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