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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23 21:38 수정 : 2009.04.23 23:10

김회승 산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마구 버리는 통에 귀중한 사료까지 다 버렸어. 근데 무슨 서류가 문제가 될지 도통 알 수가 없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

지난해 특검과 검찰이 삼성 본관과 계열사들을 압수수색할 때 ‘증거인멸’에 가담했던 한 내부 인사의 전언이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 미처 정리하지 못한 ‘회장님 관련 자료’ 상당수를 내용 검토도 제대로 못한 채 폐기했다는 것이다. 이건희 전 회장이 국내외 사업장을 다니며 남긴 육성, 전세계 유력 정치인이나 전문경영인들과 나눈 대화 내용 등 후대에 남길 역사적 자료들까지 분서갱유를 당했다며 그는 무척 아쉬워했다.

1년 6개월 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사건은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단만을 남기고 있다. 삼성은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이건희 전 회장과 그 핵심 측근들이 동시에 퇴진했고, 수십 년 그룹 경영의 중심축이었던 조직도 과감히 해체했다. 불법 차명재산에 대해서는 세금도 내고 사회를 위해 좋은 일에 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1년 전 특검 수사 발표에 즈음해 내놓은 이른바 ‘10대 쇄신안’ 중 7가지를 이행 또는 완료했다는 게 삼성 스스로 매긴 성적표다. ‘보이지 않는 손’의 위세가 여전하다는 논란이 있지만, 삼성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만큼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삼성은 여전히 가장 어렵고 가중치가 높은 문제의 답안지는 채우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다. 앞으로 열심히 이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말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삼성의 성적표에 세간의 평가가 후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삼성 사건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은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다. 60억원의 종잣돈으로 거대 그룹을 지배할 수 있게 된 실체적 진실은 결국 미스터리로 남고 말았다. 대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빠르게 절차를 밟아갈 것이다. 그에게 법적 걸림돌은 없다. 아마도 복잡한 지배구조 문제는 ‘기업 프렌들리’ 정권이 해결해 줄 것이다. 국회에 계류중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등이 통과되면, 굳이 금융과 제조를 분리하지 않고도 생명·카드 등 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려 막대한 비용을 들일 이유도 사라진다. 삼성은 올해 초 ‘이재용 인맥’들을 대거 요직에 중용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답이 나올 문제를 지금부터 부여잡고 끙끙댈 필요가 삼성에겐 없는 셈이다.

또다른 문제는 이재용 전무 자신이다. 그는 2001년 삼성전자 상무보로 입사해 업무를 맡았지만, 자신의 책임 아래 경영을 해본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삼성은 ‘착실한 경영수업’을 쌓은 것이라고 하지만, ‘온실 속 화초’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는 벤처 붐이 일던 시기 인터넷 사업을 꾸려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가 후계자로서 이 전무의 경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시도한 일종의 기획사업이었다. 구조본의 기획은 벤처 거품이 급격히 꺼지면서 실패했다. 인터넷 사업을 청산하면서 그 부실을 다른 계열사들이 떠안는 시나리오도 구조본이 주도했다. 결국 사업의 시작부터 청산까지 후계자로서 철저히 관리됐을 뿐, 실질적인 경영자로서 성공도 실패도 경험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 전무는 최고고객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국외 유력 기업인들을 만나 경영수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까지 고액과외만 하려는가. 그의 나이 이제 불혹을 넘겼다.


김회승 산업팀 기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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