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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9 22:39 수정 : 2009.03.19 22:40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금융기관을 닥치는 대로 구제하고 있는 미국이 앞으로 무슨 염치로 중국에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미국이 대혼란에 빠졌을 때 워싱턴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한 중국인 기자가 던진 비아냥이다. 당시 동석했던 미국 재무부 관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는데,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6개월 만에 그 대답을 대신 했다.

브라운 총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지난 40년 동안의 유력한 신념이 종말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반성과 금융규제 강화의 필요성도 곁들였다. 지난 10년간 영국 재무장관으로서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지휘해온 주역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고해성사인 셈이다. 1980년대 정립된 ‘워싱턴 컨센서스’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역할 축소, 금융·무역 자유화, 공공부문 민영화, 규제 완화 등이 핵심이다. 국제통화기금은 1990년대 이후 경제위기에 처한 개도국들에 구제금융 지원을 대가로 이를 강제했다.

컨센서스라는 명칭처럼 수십년간 익숙했던 기존 패러다임의 붕괴는 충격일 수밖에 없다. 전후 국제금융질서를 뒷받침해온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처럼 과거 패러다임의 붕괴에 따른 근본적 위기 때는 그 해법도 과거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기 극복의 한 축을 맡아야 할 전경련과 조석래 회장의 모습은 아쉬움이 크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제대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마치 고장난 시계처럼 그들의 눈은 과거에 맞춰져 멈춘 듯하다.

“(경제)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위기 원인이 규제 실패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조 회장이 지난달 19일 전경련 회장에 재선임된 뒤 한 말이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그는 취임사에서도 규제 완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조속 체결, 임금 삭감,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등 2년 전 내용을 거의 재탕했다. 지난 1년 사이 전세계와 한국의 경제를 강타한 수많은 사건들이 그에게는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할 정도다.

노동계의 반발을 무시한 대졸 초임 삭감과 해고요건 완화 요구, 비정규직 고용기한 연장을 위한 꿰어맞추기식 설문조사, 한-미 자유무역협정 조기비준과 금산분리 완화 요구 등등. 최근 전경련의 모습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자신의 고집은 일단 접고 사회적 컨센서스를 만들려는 노력과는 거리가 있다. 재계에서도 전경련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조 회장은 18일 런던에서 열린 G20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했다. 4월 초 G20 정상회의에 앞서 경제계가 만나는 자리다. 정상회의 의제로는 경제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보호주의에 대한 대처와 경기부양 대책, 브레턴우즈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모색 등이 꼽힌다. 지나친 규제완화와 시장 기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를 자초했다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출국 전에 “G20 정상회의에서 금융규제 강화처럼 기존의 틀을 크게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딴청을 부렸다.

조 회장의 이번 영국 일정은 3박4일이다. 비행기 타고 있는 시간을 빼면 실제 런던 체류 시간은 하루 정도밖에 안 되는 강행군이다. 고희를 넘긴 조 회장의 건강도 문제지만, 차라리 일정을 조금 늦춰서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훨씬 중요할 듯하다. 마침 비즈니스 서밋의 주최자는 영국의 브라운 총리다.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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