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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2 18:51 수정 : 2009.03.12 20:45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한반도의 봄이 다시 흉흉하다. 그동안에도 북은 군사연습 기간에는 대화를 중단했다. “대화와 전쟁연습은 양립할 수 없다”는 건 북의 움직이지 않는 원칙이었다. 지금은 대화마저 없으니 혁명적 무력으로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3월9일 키리졸브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 시작되자 북은 같은 날 ‘최고사령부 보도’를 통해 전투준비 태세 명령을 전군에 내리고 인공위성(미사일) 발사를 준비중이다.

‘키리졸브’는 ‘중요한 결의’라는 뜻이다. 이 군사훈련의 역사는 오래됐다. 서방세계 최대의 야외 기동훈련으로서 1976년 처음 실시된 ‘팀스피리트’(협동정신)부터 정례화됐다. 94년부터는 아르에스오아이(RSOI 수용 대기 전방전개 통합)라는 긴 명칭의 전시증원 연습으로 바뀌었고, 2012년 전시 작전통제권(전작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되는 것과 관련해 결의를 다지자는 취지로 2008년부터 키리졸브가 됐다.

그 역사만큼이나 팀스피리트 연습은 북에게 ‘북침용 핵전쟁 연습’이었고, 그 중단은 협상의 목표였다. 이 훈련은 한반도 긴장의 결과였지만 거꾸로 원인으로 작용했다. 75년 베트남(월남)의 패망은 북의 남침위협으로 증폭됐고,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안보공약을 의심했다. 그 다음해인 76년부터 팀스피리트가 시작된 배경이었다. 이로 비롯된 긴장은 그 해 8월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를 치던 미군이 북한 경비병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이른바 ‘도끼만행 사건’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거친 한반도 전문가 돈 오버도퍼의 저서 <투 코리아>에는 키신저 국무장관이 대책회의 뒤 “북한놈들의 피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고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했다. 북한군의 무선통신을 감청한 한 정보분석가는 미국의 대대적인 무력시위 앞에 “그들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고 말한 것으로 오버도퍼는 전하고 있다.

팀스피리트가 중단된 건 33년 동안 딱 한 번으로, 92년이다. 91년 주한 미군의 전술핵 철수,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과 기본합의서 채택, 그리고 북한의 핵사찰 수용 등이 낳은 결과였다. 1년 만인 93년 팀스피리트는 재개됐고 전쟁의 악몽도 재현됐다. 훈련재개와 동시에 북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고, 1차 핵위기 속에서 북-미 핵협상이 큰 진전을 못 보자 94년에도 팀스피리트는 이어졌다. 북한은 서울 불바다론으로 맞섰다. 미국이 추진한 유엔의 대북제재에 북이 선전포고로 나오자 76년 8월처럼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대대적인 병력증파 방침을 세웠다. 주한미군 장교들은 전쟁의 임박을 예감하고 있었고, 갈루치 북핵 협상대표는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8월의 총성’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버도퍼 말로는, 92년 10월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이뤄진 팀스피리트 재개 결정은 정치적 판단이나 부처간 협의 없이 이뤄진 것이었다.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널드 그레그는 이 발표가 자신의 재임기간 중 가장 ‘중대한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남북은 갈라서고 ‘클린턴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냉전은 추억이 아니라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얼마 전 서울서 오바마 행정부가 “보즈워스 대북특사를 임명한 것은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핵 협상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협상이 미사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이라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놔둔다면 부팅을 새로 해도 전쟁의 게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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