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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0 18:45 수정 : 2009.03.11 10:03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와 기획재정부 사이에 설전이 오간다. 우리 정부는 ‘위기설’ 보도를 두고 “근거 없는 한국 경제 때리기”라며 발끈하고, 외신은 “한국 정부가 들이댄 근거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고 코웃음을 치는 모양새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 당시 정부와 외신 사이에 오갔던 공방도 꼭 이랬다. 해명이 군색스럽게, 주요 외신들이 줄줄이 위기 보도에 가세하는 것도 닮은꼴이다.

위기설은 과연 오보일까? 아니, 나는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사실이 있다면 바로잡고, 관점에 대한 논쟁도 해야 한다. 하지만 위기설을 부른 우리 내부 취약점을 찾아내고, 근본적인 해법을 묻는 게 먼저 할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오보(?)에 앞서 한국 등이 위기에 더 취약했던 이유를 진단하고, 해법을 조언한 기사가 더 흥미로웠다. 이들은 미국 소비붐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수출경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위기의 고삐를 틀어쥐려면, 내수 부양에 눈을 돌리라 했다. 성장의 열매가 노동자에게 더 많이 돌아가도록 노동집약적 서비스 산업을 지원하고, 복지 투자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소비자가 돈 쓸 여지를 키우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정부도 내수 부양은 고민한다. 추경에서 4대강 정비사업에 수천억원을 더 쓴다는 말이 나오고, 저소득층 소비쿠폰 얘기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가 건넨 조언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이다. 사회서비스 투자, 소비 활성화, 삶의 질로 이어지는 ‘보편적 복지’ 해법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아마도 ‘오보’ 언론의 조언은 통하지 않을 모양이다.

갑론을박 추경 논란 속에 장애아 재활치료를 취재하다 만났던 이들을 떠올렸다. 두부공장 판매원으로,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하며 남매를 기르는데, 아들은 몸도 못 가누는 1급 뇌성마비였다. 사실 중증 장애아가 있으면, 맞벌이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의 150만원 월급으로 생활비와 치료비를 감당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틈틈이 야쿠르트 배달 일에 나섰고, 근근이 50만원을 벌어 보탰다.

이들에게 가장 큰 부담은 아이 치료비였다. 병원비·재활치료비 등으로 아이 증세가 심할 땐 한 달 수입 절반인 100만원을 쓴 적도 있다. 딴 데 쓸 돈이 있을 리 없다. 정부는 아니라 해도 이들 스스로 빈곤층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들은 하반기부터 20만원 상당의 재활치료비 지원이 끊길 처지다. 재활치료 바우처 지원 지역을 전국으로 넓히는 대신, 지원대상 소득 구간을 확 줄인 탓이다. 지난해는 전국 가구평균 소득 100% 이하면 바우처를 줬지만 올해는 50% 이하여야 지원 대상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들의 재활치료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 했다. 뇌성마비는 방치하면 근육이 굳어지고 팔다리가 뒤틀린다. 부모도 온몸을 뒤트는 아이와 함께 밤잠을 자지 못한다.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자지러지는 아이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그러니 어쩌겠나. 빈곤한 엄마는 딸애가 조르는 봄옷을 사는 데 지갑을 열 수가 없다.


올해 장애아 재활치료 바우처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290억원이다. 정부가 지원 대상에서 제쳐버린 야쿠르트 엄마가 아이와 편한 밤을 보내는 데 필요한 추경 예산은 150억원이다. 정부가 이들을 복지에서 제쳐두는 한, 지갑은 열리지 않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본사에 가서 으름장을 놓기 전에 할 일은 이런 이들을 돌아보는 것이다.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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