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3.05 22:25 수정 : 2009.03.05 22:25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만약에 한강도 땅처럼 몇 평씩 분양한다면, 강물이 맑아질지도 몰라. 사람들이 자기 강물에 누가 불법 오염물을 방류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테니까.” 몇 해 전 부동산 광풍이 불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다소 생경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냥 웃을 수만 없었던 것은, 농담에 담긴 ‘모두의 것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지난 2월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에 쓰인 글이다. 김 추기경이 1966년 주교 서품을 받을 때 사목 표어로 삼았다는 말이다. 그가 살아서 실천하려 한 이 글귀를, 세상을 떠나며 남긴 것을 보면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짐작게 한다. 김 추기경의 타계에 대한 안타까움은 한동안 매체들을 뒤덮다시피 했다. ‘모든 이를 위한 삶, 모든 이를 울렸네’ ‘갈라졌던 우리, 다시 하나되기를’ ‘국민 하나로 묶고 … 대한민국이 따뜻해졌네’ 당시 주요 보수신문들의 제목이다. 범국민적인 추모 열기를 국민통합 쪽으로 이끌고자 하는 뜻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토록 통합과 단결, 사랑과 화해를 외치던 정부·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쟁점법안 처리를 눈앞에 두고는 태도를 바꿔 ‘권력 지지층 이익 챙기기’에 총궐기했다. 여당은 쟁점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외면한 채 일방 처리를 서둘렀고, 보수언론은 직권상정과 강행 처리를 편들었다. 언론법과 은행법은 여야 충돌로 유보되었을 뿐, 한나라당은 앞으로 있을 임시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통과시킬 태세다.

여당 의원들이 육탄전을 불사하면서 밀어붙인 법안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법 제정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신문-방송 겸영과 대기업 신문 등의 지상파, 종합편성 보도채널 허용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언론법 개정안의 수혜자는 재벌과 ‘조·중·동’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여론의 독과점 심화와 사회적 약자의 여론시장 참여 축소,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다.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한도를 10%까지 허용하는 은행법 개정안을 통해 은행지분을 10%까지 높일 수 있는 경제주체는 삼성·현대·엘지 등 소수 재벌밖에 없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경제의 독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중소기업의 세계기업 도약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담고 있는 정보보호법, 휴대전화 감청을 합법화하는 통신비밀보호법,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수혜자는 권력자들과 수사기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법안들이 통과되면, 권력 비판은 제약받을 것이고 사회적 약자의 표현과 집회의 자유는 위축될 것이다.

앞에선 ‘모두를 위하여’를 외치면서 뒤에선 공동체의 이익을 허무는 사람들에게 김 추기경의 글을 다시 한번 읽기를 권한다. “정치에서 인간애가 빠지면 결국에는 독재와 억압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고, 경제에서 인간애가 빠지면 결국에는 탐욕과 수탈밖에 남지 않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강자 위주로 사회를 재편하는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괴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 말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작가였던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자신의 동맹세력에게는 항구적인 이익을 안겨주고, 나머지 국민에게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조처 따위로 생색내는 저들 권력집단을 직시할 때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 프리즘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