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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24 19:40 수정 : 2009.02.25 15:58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1980년대 중반, 정부는 과외를 금했지만 학생들은 생활비나 용돈을 버는 데 ‘불법’을 마다지 않았다. 단속도 없었다. 나도 과외를 하며 중학생, 고등학생, 서울의 강남북 학생, 이른바 범생이와 일진회 ‘짱’ 등 다양한 학생을 만났다.

과외 선생으로서 고민은 당연히 성적이었다. 학부모는 ‘월급’을 줄 때면 늘 자녀의 성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성적이 오르면 모르지만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불안했다. ‘해고’ 때문이다.

성적을 쉽게 올리는 방법은 문제풀이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논리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자주 나오는 문제의 유형을 외도록 하면 성적은 금세 올랐다. 심지어 수학도 암기 과목으로 가르쳤다. 이런 유형의 문제는 이렇게 풀면 된다는 식으로. 모든, 절대, 결코 등의 단어가 들어간 문항은 오답이라며 ‘찍는’ 방법도 일러줬다. 효과 만점이었다.

지금도 그때 만났던 ‘제자’들이 가끔 생각난다. 이상한 것은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던 ‘문제아’들이 더 보고 싶다는 것이다. 요즈음 말로 부적응 학생으로 불렸을 그 아이들은 공부 자체를 거부했다. 20대 초반의 철부지 과외 선생으로 일주일에 대여섯 시간의 만남이 전부였지만 한두 달 지나면 학력 수준을 포함해 그 아이와 가정환경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툭하면 골프채를 휘두르는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두려움에 떠는 아이,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부모의 불화와 무관심으로 늘 불만에 가득 찬 아이, 자신의 적성과 다른 길을 강요받아 괴로워하는 아이 등.

그런 아이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괴로웠다. 어느 순간 공부 대신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공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눈을 피해 영화·음악·연애 따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수업’이 없는 날 밖으로 불러내 술집에서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나는 곧 ‘해고’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엉터리 선생이 좋았는지 가출한 뒤 전화를 걸어왔고, 심지어 외국에서도 연락을 하곤 했다. 그들을 보며 ‘스승’으로서 가진 답답함은 우리 교육제도가 그런 아이를 돌보는 일에 관심이 적다는 것이었다. 물론 학교에 그런 아이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교사들이 적잖다. 하지만 학력고사와 명문대 진학 수는 줄세우기의 바로미터와 그를 잣대로 한 교장의 질책이 어깨를 짓눌러 그런 아이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교육 현장에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예전에 비해 돌봄이 필요한 부적응 학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혼이나 경제난에 따른 가정 해체로 방치된 아이, 학업성적은 좋지만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 건강이 좋지 않은 아이, 결혼 이주여성의 자녀로 우리말 구사나 학습 능력이 처지는 아이 등.

정부는 일제고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학력평가를 통해 기초 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가려내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법 무면허’ 선생 노릇을 했던 짧은 경험으로 보면, 적어도 일제고사가 그 답은 아니다. 일선 교사들은 일제고사가 없어도 어떤 아이들이 기초 학력에 못 미치는지 잘 안다. 특히 성적 높이기 보충학습보다 사랑과 관심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적지 않음을 잘 안다. 하지만 일제고사와 같은 줄세우기 교육에는 그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 대한 평가는 뒤처진 학생들을 ‘제대로’ 돌보고자 하는 교사들이 설 자리를 더욱 좁힐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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