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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17 20:52 수정 : 2009.02.18 11:32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대통령이 ‘봉고차 모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잘한 일이다. 식당 일이 끊기고 단칸방에서 쫓겨날 뻔했던 모녀는 기초수급자가 됐다. 주공이 임대주택과 보증금을 지원해 줬고, 이제 월세만 5만9천원 내면 된다.

문제는 봉고차였다. 교회에서 뻥튀기 행상이라도 해 보라고 준 낡은 차는 모녀가 수급자가 되는 데 장애물이었다. 생계용이 아니면 차값이 월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보험서류에 자동차 가격이 75만원이라면, 다달이 75만원 수입을 매기는 상황이다.

‘차량 기준’은 사실 해묵은 논란이다. 복지부 지침에는 ‘자가용을 운행하는 가정에 기초수급을 주어 보호하는 것은 국민 정서상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나와 있다. 차를 굴릴 정도면 그만한 월소득이 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봉고차 모녀가 그러했듯, 사람들 사정이란 게 가지가지다. 정부 복지 수혜 기준엔 벗어나지만, 실은 누구보다 어려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복잡한 사정이 어디 ‘헌차’뿐일까. 부양의무자 기준에 이르면 사연은 더 기막히다. 돈 한푼 보내 주지 않고, 연락도 끊긴 서류상 자식들이 빈곤 노인들의 복지 혜택을 가로막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나는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흔한 사연이다.

대통령은 이런 속사정을 살피지 못하는 복지 행정을 채근하고, 사각지대를 걱정했다. 보건복지콜센터를 방문해 봉고차 모녀와 통화하고 ‘찾아가는 복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현재 읍·면·동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1만여명인데, 이들은 전국 150여만 기초수급자와 부양의무자 내역을 살펴야 한다. 또 수급신청 탈락자를 가려내는 것도 이들 몫이다. 이 밖에도 기초노령연금 관리, 장애인·결식아동 지원 등 하나하나 살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하지만 일손 부족보다 앞서는 건 ‘돈’ 문제다. 대통령의 특별한 눈길은 모든 복지 수급 기준이 모녀에게 호의적이도록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눈길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일선에선 그럴 여지도, 이유도 없다. 예산이 달리는 읍·면·동에선 찾아오는 빈곤층을 걸러내기에 바쁘다. 대개는 식당 일이 끊겼다고 호소해도, 근로 능력이 있으니 복지 신청은 퇴짜맞기 십상이다. 아니면, 소득 확인이 어려우니, 월 30여만원씩 추정소득이라도 부과한다. 집 나간 서류상 남편, 알코올 중독 무능력 남편, 이 모든 속사정들을 밝혀야 할 이유가 없다.

복지부는 봉고차 사연이 새삼스레 ‘발굴’되자, 기초수급 차량 기준 재검토에 나섰다. 뻥튀기 장사, 다시 말해 생계용으로 차량을 쓸 계획이 있다면, 여섯 달이든 얼마든 유예기간을 줄 것을 검토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복지부는 “추가 예산 소요는 거의 없을 것”이라 내다봤다. 생계용으로 자동차를 쓰면, 복지부 지침이 ‘자동차를 이용한 소득 파악에 철저하라’고 정해둔 까닭이다. 현재도 이런 가구에는 추정소득 잣대라도 들이대는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은 최근 당조직으로 희망센터를 만들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팔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각종 복지 수급 기준을 완화하고 예산만 추가 배정하면 구제될 사각지대는 이미 상당 부분 드러나 있다. 지금은 있는 돈을 나눠주는 데 개입해 생색을 낼 게 아니라 추경에서 돈을 더 끌어오는 게 시급하다.

봉고차 모녀가 대통령 눈에 뜨이는 로또를 맞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로또는 확률이 너무나 희박하다. 지난해 로또 당첨 없이 기초수급 언저리를 맴돌던 이들이 260여만명이었다.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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