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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2.03 22:54 수정 : 2009.02.03 22:56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통증은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통증은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경고 신호다. 몸은 통증이 크건 작건 곧바로 반응한다. 칼에 찔렸거나 손가락에 가시가 들었거나 마찬가지다.

사회도 그렇다. 문제가 생기면 신호를 보낸다. 사람들의 아우성이 통증의 구실을 한다. 서울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외침은 대표적인 사회적 통증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절규도 비슷한 경고음이다.

우리 몸의 통증은 나타나는 부위가 수없이 많고 형태도 다양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의 모든 곳에서 통증이 발생한다. 형태도 다양하다. 쓰리거나 콕콕 찌르거나 쑤시거나 뻐근하거나 깨질듯하거나 화끈거린다.

우리는 그런 다양한 통증에 모두 최선을 다해 대처한다. 머리나 심장의 통증을 중하게 여기지만 눈에서 멀리 떨어진 발가락의 통증이라고 해서 외면하지 않는다. 작은 통증이 큰 병의 징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증도 몸처럼 거의 모든 곳에서 나타난다. 교육·환경·노동·복지·여성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개선 건의, 법적 대응, 직접 행동 등 형태도 다양하다. 건강한 사회라면 모든 사회적 통증에 주의를 기울인다.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가의 목소리나 노동자·농민·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나 똑같은 경고음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몸의 경고음인 통증에 최선을 다해 대처한다. 외과의학적 처치가 필요하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간다. 원인을 알 수 없으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최근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운동을 했는지,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아닌지 등등. 그래도 알 수가 없으면 전문가를 찾아가 진찰을 받고 검사를 한다.

통증은 억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통제에 의존하면 당장은 통증은 사라지지만 병은 깊어지게 된다. 소염제도 비슷하다. 염증을 없애주지만 원인이 사라지지 않으면 염증은 다시 생긴다.

통증을 없애는 방법은 당연히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가시가 박혔으면 빼고, 찢어진 곳은 꿰매고, 부러진 곳은 이어서 아물어 붙을 때까지 묶어 놓아야 한다. 진통제로 통증을 억누르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손가락이 잘려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 진통제로 통증을 억누른다고 피가 멎지는 않는다.


사회적 통증도 마찬가지다. 공권력을 동원해 ‘통증’을 ‘진압’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통즉불통(痛卽不通)이라고 했다. 몸이 아픈 원인은 기혈이 제대로 순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사회로 보면 소통의 부재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증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하고 이로운 감각이다. 통증이 없다면 병을 발견할 수가 없다. 발견을 못 하니 치료할 때를 놓치게 된다. 사회적 통증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통증’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사회적 통증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회적 통증이 보내는 경고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진통제적 처방에 매달리고 있다. 용산 사태의 처리가 대표적이다. 그런 미봉책은 우리 사회의 병을 더욱 깊게 만드는 일이다. 통증에 무감각한 사회는 죽어가는 사회다. 우리 사회가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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