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9 19:35
수정 : 2009.01.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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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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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취임 연설에서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 않은 채 “권력을 쥔 자들이 불끈 쥐고 있는 주먹을 편다면 미국은 손을 내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5일 “미국이 먼저 불끈 쥔 주먹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3일 청문회에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보고 먼저 주먹을 펴라는 얘기일 수 있다. 북한 외무성이 13일 대변인 담화와 17일 대변인 회견을 통해 답을 내놨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그로 인한 핵위협 때문에 조선반도 핵문제가 산생되었지 핵문제 때문에 적대관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아야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은 거꾸로 된 논리다.”
사실 이는 해묵은 대립이다. 전임 부시 행정부는 2005년 4차 6자 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기 전까지 ‘선 핵폐기론’을 고수했다. 그 뒤 6자 회담은 ‘누가 먼저냐’에서 벗어나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동시 이행’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2단계 불능화까지의 합의는 이런 원칙 위에서 가능했다. 북 외무성 담화가 “선 핵폐기는 9·19 공동성명의 정신에 대한 왜곡”이라고 말한 이유다.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선 핵폐기론을 고수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클린턴 국무장관이 강조한 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의 핵무기 제거로 보인다. 지금 6자 회담은 2단계 불능화 마무리의 해법을 못 찾고 있다. 검증의정서 때문이다.
일부에선 북한이 이 외무성 담화와 회견을 통해 핵 군축 협상과 동시사찰을 주장한 것으로 보지만 그건 곁가지다. 핵 군축 협상은 북한이 2005년 2·10 외무성 성명에서 처음으로 핵 보유를 선언할 때부터 제시된 논리다. 그건 미국과의 수교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만약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 핵문제를 풀려면(미국이 관계 정상화를 거부한다면) 핵 보유국들이 모여 앉아 동시에 핵 군축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는 논리일 뿐이다. 주한미군의 핵우산 등을 포함하는 동시 사찰 주장도 검증 문제가 핵 폐기의 최종 단계에서나 가능하다는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봤는지 20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담화의 해설을 내놨다. 이를 보면 담화의 요체는 ‘검증 문제에 대한 역공세’다. 지금 검증 합의를 요구한다면 동시 행동의 상응조처로 미국도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미·일 등은 검증의정서 ‘합의’를 2단계 불능화로, 그 ‘이행’은 3단계 폐기로 구분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북한이 보기에 합의에는 이행 의무가 포함돼 있다. 검증을 이행하는 시점인 ‘비핵화가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단계’에서 북한이 취해야 할 조처를 미리 ‘약속’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미국도 3단계 폐기의 마지막 절차에 상응하는 조처들을 내놓고 ‘약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검증을 앞에 두면 협상은 복잡해지고 교착상태에 빠질 수 있다. 멀고 험한 과정이다. 조선신보는 그보다는 관계 정상화를 통한 비핵화(핵 폐기)가 ‘단걸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악수를 하려면 주먹을 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손을 잡으면 주먹을 쥘 수도 없거니와 쥘 일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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