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1.20 19:01
수정 : 2009.01.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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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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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정치철학자 샹탈 무페는 자유민주주의가 구조적으로 취약한 체제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절차만 밟으면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기계가 아니다. 손 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리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는 매번 쟁취하고 매번 방어해야 겨우 작동하는 체제다. 무페는 자유민주주의가 강고하지 못한 이유를 그 체제의 내적 긴장과 역설에서 찾는다. 개인의 자유, 법의 지배와 같은 자유주의의 가치는 민주주의 가치와 상충하기 일쑤다. 자유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도전에 열려 있어야 하고 반대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제약을 허락해야 한다고 무페는 말한다.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견제받지 못할 경우, ‘양을 잡아먹는 늑대들의 자유’로 전락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제동장치가 풀린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자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란 본디 인민의 자기지배를 뜻하고, 그것은 피치자가 곧 통치자임을 뜻한다. 통치자와 피치자의 이런 일치는 근대 민주주의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성립한다. 국민의 선거로 뽑힌 통치자가 인민의 일반의지를 체현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다. 그러나 그 원리는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만약 통치자가 권력 취득 절차의 합법성만을 믿고 전횡을 휘두른다면 민주주의는 그 즉시 독재로 떨어진다. ‘국민이 뽑았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는 믿음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과 무관하다. ‘해머가 민주주의를 때렸다’고 한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서 ‘민주주의’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은 ‘독재 욕망’이다. 독재 욕망의 분출을 막으려면 인권·자유·법치와 같은 가치들이 대항세력으로 서야 한다.
스마트파워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결합을 뜻한다. 군사력·경제력과 같은 강제적 힘을 문화적 매력, 도덕적 권위 같은 비강제적 힘과 결합해 구사하는 것이 스마트파워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등장과 함께 외교 일선에 복귀한 조지프 나이가 제안한 이 개념은 애초에 패권주의적 세계지배의 기술이다. 이 개념을 일국적 상황으로 돌려놓으면 그 기술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국민을 제 뜻대로 통치하려는 권력자라면 누구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동시에 써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때 국민의 저항과 반대를 제압하는 강제적 수단이 하드파워다. 경찰·검찰·국정원·국세청 같은 하드파워 기관은 권력 유지의 필수 도구다. 권력은 이 하드파워와 더불어 국민의 호감을 얻고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는 힘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소프트파워가 필요한 이유다.
소프트파워는 방송·신문·인터넷과 같은 여론 형성·표출 공간에 거주한다. 권력이 자체의 매력으로 국민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할 때, 여론 공간을 재편해 소프트파워를 확보하고자 하는 욕망은 억누르기 어려운 것이 된다. 여론 공간을 제 뜻대로 바꾸어 놓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은 한껏 부풀리고 부끄러운 부분은 어떻게든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다. 거짓도 진실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이 정부는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권력기관의 장을 모조리 제 사람으로 앉힌 데 더해 방송법을 비롯한 악법들을 한사코 관철하려 한다. 그러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이런 퇴행적 결합은 민주주의의 몰락을 부를 뿐이다. 시대는 궁핍하고 민심은 흉흉하다. 밀어붙이기만 할 뿐 도무지 성찰을 모르는 이 정권의 권력정치가 한겨울 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는 참화를 불렀다. 불길이 국민의 마음에 새겨놓은 화인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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