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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1.08 19:57 수정 : 2009.01.08 19:57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북과 남이 새해 첫날 신년 공동사설과 국정연설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말들은 이렇게 들린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 이 말은 1990년대 후반 중국식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해당된다. 이 대통령은 1일 국정연설과 지난달 31일 새해 통일외교 분야 업무보고에서도 변함없이 ‘의연한 대처’만을 되풀이했다.

국정연설에서는 의연하지 않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북한에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벗고 협력의 자세로 나오라”고 말했다. 물론 북이 먼저 공격했다. 신년 공동사설은 “(남조선 집권세력들이) 6·15 선언, 10·4 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파쇼 독재시대를 되살리며 북남 대결에 미쳐 날뛰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북은 늘 그런 거 아닌가. 오히려 구태를 벗으라는 말이 북남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또다른 구태가 된다는 건 모르는가. 이 정부가 내세운 남북관계 비전은 상생·공영이다. 그러나 그 비전도 이 대통령에게 오면 새마을운동에서 하던 구호처럼 되고 만다. ‘힘을 모으자’,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자’ 등등 천리마식 대진군을 얘기하는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과 뭐가 다른가. 또 북한보고 변하라고 하는데 ‘죄지은 자한테 회개하라’는 목사의 설교처럼 들릴 뿐이다. 서로 남북관계의 어둡고 고통스런 현실은 외면한 채 메시지 대신 구호만 외치고 있다. 그러고는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선언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대책회의’ 상황실을 차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첫 현지지도로 ‘근위서울 류경수 105 탱크사단’을 찾았다. ‘경제 살리기’의 경제 대통령과 ‘선군 정치’의 국방위원장답다.

그러나 그건 제 갈 길을 가는 게 아니다. 남북은 지금 서로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이제 변화는 외부에서 강제될 수밖에 없다. 1월 말이 지나면 북핵은 다시 불능화 중단에 직면할 수 있다. 일본이 불능화에 상응해 부담하기로 한 중유 20만톤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증의정서 합의와 에너지 지원을 연계할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6자 회담 당사국 사이엔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북-미는 이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과거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과 북한이 중유냐 불능화 중단이냐를 놓고 티격태격할 것 같지는 않다. 더 큰 그림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뜻을 대변해 온 <조선신보>를 보면, 북한에게 검증 문제는 ‘기술적 실무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시료채취의 검증 문제를 ‘국가 안보와 주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검증 문제 타협안을 마련하고자 크리스토퍼 힐 미국 동아태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 신문은 “핵문제가 본질적으로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는 조·미가 적대관계 청산의 이정표를 세워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인데, 바로 그 시기 북한이 검증 문제와 관련해 미국에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을 역제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점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오바마 진영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 이상으로 검증을 강조하고 있으며, 동시에 핵문제만이 아닌 북-미 관계 전반의 현안에 대해 일괄타결의 포괄적인 접근을 추구한다는 정책 방향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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