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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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배우 문근영씨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8억5천만원을 내놓아, 역대 개인 기부액수로 1위를 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연말이면 사회 명사들이 ‘사랑의 열매’라는 빨간 배지를 다는데, 이는 공동모금회 나눔 캠페인의 상징물이다. 그래서 공동모금회 이름은 낯설어도 사랑의 열매엔 익숙한 이들이 많다. 최근 국회가 연일 시끄럽다. 거대 여당이 재벌의 방송 진출 등 85개 중점처리 법안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밀어붙이겠다고 하자, 소수 야당은 몸싸움도 마다 않고 있다. 직권상정이 뭔가. 국회 상임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하는 입법 절차를 건너뛰고, 바로 본회의 표결에 부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의석수 분포로 볼 때, 여당이 소통과 합의 생략을 작심한다면 야당이 표결로 법안 통과를 막을 방법은 없다. 실은 사랑의 열매도 여기에 휘말려 있다. 여당은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는 항목으로 43개 법안을 제시했는데, 엉뚱하게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부 개정안도 여기에 들어가 있다. 이 법안이 뭐기에 그럴까. 현행법은 공동모금회 운영과 재원 배분에 정부 입김을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복지부 차관이 위원장이 되는 심사위원회가 전문모금기관을 여럿 지정하고, 평가와 재지정 권한도 갖도록 했다. 정부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쉽게 말하면 ‘문근영의 돈을 누가 쓸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다. 연간 2700억원에 가까운 기부금 배분 주도권을 둘러싼 논란이다. 정부 영향력 강화를 둘러싸고 야당과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의혹은 두 가지다. 뉴라이트나 일부 기독교계 등 친정부 단체에 재원을 편파적으로 나눠줄 가능성이다. 또 하나는 ‘능동적 복지’를 내세운 현 정부가 국고를 써야 할 곳에 민간 재원을 활용하려 들 가능성이다. 실제 10여년 전 공동모금회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런 부작용이 비일비재했던 전사가 있다. 현행 복지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펄쩍 뛰지만, 새해 업무보고엔 ‘민간 복지자원 활용을 위해 모금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실적 자랑을 해놓았다. ‘같은 돈으로 더 나은 복지를 하라’는 청와대 주문서를 받아든 복지부로서는 한 푼이 아쉽다. 재원은 옹색하기만 한데 돈 달라는 데는 많고. 그러니 민간 재원을 흘낏거리게 된다. 이런 ‘권한’을 아쉬워한 것은 실은 현 정부에만 국한되진 않는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정부도 모금회에 관여하고 싶어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공동모금회는 ‘관치’ 족쇄를 벗은 뒤 기부 실적을 열서너배로 끌어올렸다. 독점적 지위가 낳은 비효율이나 관료주의 폐해 또는 코드 배분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웠을 리는 없다. 그렇다 해도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일이지, 사회 원로와 학계가 앞다퉈 반대하고 ‘오해’의 소지가 큰 법안을 공청회 한번 없이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지난 상임위에서 여당인 윤석용 한나라당 의원은 안팎의 의구심에 공감을 표했다. “공동모금회가 상당히 권력기관으로 되어 있고 … 사실 코드에 맞는 사회복지단체에 배분하는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마는, 또 새로 만들어도 그렇지 않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렇게 복수 단체를 계속 만들면 어쩌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야 되고, 아니면 실세마다 하나씩 만들어야 되는 걱정이 없겠습니까?” 아름다운 배우 문근영씨의 돈, 노숙인의 작은 정성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가장 필요한 곳에 가야 한다. 정부와 정부에 줄댄 자들의 쌈짓돈이란 멍에를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seraj@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입법전쟁 ‘불씨’ 놔둔채 봉합…2라운드 2월로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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