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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25 20:59 수정 : 2008.12.25 20:59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씨티그룹 50000, 에이티앤티(AT&T) 12000, 선마이크로시스템스 6000, 듀폰 2500 …. 이쯤 되면 눈치챘을 터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 주요 기업들의 감원 수치다. 12월 초 미국 경제잡지 <비즈니스위크>에는 한국의 유한킴벌리와 문국현 전 사장을 조명하는 릭 워츠먼 드러커 연구소장의 칼럼이 실렸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맞아 대다수 기업들이 대량해고에 나설 때 오히려 교대근무를 늘려 고용을 유지하고, 남는 시간을 직원교육에 할당해 경쟁력을 높인 문 사장의 뉴패러다임 성공사례가 미국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들린 것 같다. “감원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최선의 해법이 아니다”라는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도 소개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관심은 온통 일자리 창출에 쏠려 있다. 미국 실직자 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내년 실업률이 9%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은 ‘발등의 불’이다. 20일에는 향후 2년 동안 일자리 창출 목표를 300만개로 늘린다는 발표가 있었다. 일자리 창출의 핵심은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공건물 건립과 도로·다리 건설, 초고속 인터넷통신망 확산 등과 같은 대규모 공공사업이다.

우리도 나을 게 없다.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일자리가 오히려 줄면서, ‘실업자 100만 시대’가 예고된다. 일부 기업에선 감원이 시작됐다. 그나마 다행은 외환위기 때 대량해고에 앞장섰던 대기업들이 자제하는 점이다. 구본무 엘지 회장이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런 인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 못한다. 삼성전자조차 급격한 수요감소로 4분기에 수천억의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국민들 가슴을 멍들게 하는 것은 정부가 대량해고에 앞장서는 일이다. 최근 공공기관 69곳에서 10% 이상 감원하는 구조조정안이 발표됐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2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는다. 이달 초 대통령이 농촌공사 감원계획을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칭찬할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실업난이 깊어지는데 정부가 대량해고에 앞장서는 것은 명백한 방향착오다. 정부가 내년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과도 정면배치된다. 한 손으로 일자리를 뺏으면서, 다른 손으로 실업대책을 내놓는 것은, 국민을 놀리는 짓 아닌가? 오죽했으면 한 장관급 인사조차 사석에서 “국민에겐 와닿지 않을 것”이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을까? 더 큰 걱정은 대기업들한테 대량해고의 명분을 준다는 점이다. 4대 그룹의 한 사장은 “그러지 않아도 눈치 보고 있었는데, 정부가 부담을 없애줬다”고 털어놨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국민 다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또 단순히 사람을 줄여서 효율성을 높이는 숫자놀음은 진정한 혁신이 아니다.

이 정부가 원칙과 상황에 맞지 않는 오발탄 정책을 고집하다가 국민만 골병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원유값이 급등하는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다 물가불안만 부채질한 것이나, 지난 9월 중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직후 세계적 금융경색으로 기업에 비상이 걸렸는데도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들을 불러 투자·고용 확대를 외친 것은 많은 코미디 중 일부일 뿐이다.

공공부문 고용창출에 애쓰는 오바마와, 반대로 공공부문 대량해고에 앞장서는 이명박. 국민들 입에서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정말 맞아?”라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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