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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16 20:35 수정 : 2008.12.16 20:35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좀더 착하게 살아야겠다.” 지난여름 기특한 결심을 했다.

덴마크와 독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동행들도 “그럼, 그럼!” “착하게 살자!”고 대번에 맞장구를 쳤다. 뜬금없이 웬 다짐이었을까? 실은, 부러워서 그랬다. 유럽 노인요양 시스템을 보러 갔는데, ‘머나먼 천국’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번 생에 착하게 살아 공덕을 쌓으면, 다음 세상에 저런 복지국에 태어나질까 싶었다. 여차저차 농담성이 짙었지만, 그만큼 부럽더란 얘기다.

덴마크에서 둘러본 노인요양 시설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그곳에서 만난 80대 노인은 놀이공원에서 25년 동안 솜사탕을 팔던 이였다. 은퇴하고는 20년 가까이 연금생활자로 지냈다는데, 아내가 세상을 뜨고 거동이 힘들어지자 요양시설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시설 이용료는 연금으로 낸다지만, 이 비용을 쓰고도 용돈이 30만원쯤 남아야 한다는 게 정부 원칙이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돈을 추가로 보태준다니, 인사치레 등 ‘품위 유지비’ 걱정도 없는 셈이다. 또다른 90대 여성은 요양시설에서 27년 동안 노인을 돌봤다고 했다. 그는 “이제 내가 서비스를 받을 차례”라고 말한다.

그곳에선 145명의 시설 거주자를 돌보느라 직원 300명이 바삐 움직였고, 노인들은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솜사탕 장사를 했다면, 노인 간병을 했다면, 저런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까? 십중팔구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사정은 어떠한가? 독일 요양보험이 ‘피자 한 판 값으로 노인요양 문제를 해결하자’는 구호를 내세웠다면, 우리는 이보다 적은 ‘김밥 몇 줄 값’ 수준에서 첫발을 뗐다. 간병 일을 하던 중장년 여성 상당수도 요양보호사 일자리로 생계 터전을 옮겨왔다.

지난달 요양보호사협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선 40~50대 아주머니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먹고살기도 급급한 와중에 자격증을 땄지만, 시급제로 기껏 월 70만~80만원을 쥔다는 요양보호사들의 한숨과 분노가 날것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시설에서 월급제로 일해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한 중년여성은 현행 요양 서비스의 한계를 서글프게 털어놨다. “나도 힘들지만, 시설에 들어온 노인분들 보면 불쌍해 죽겠어요. 그냥 눕혀만 놓고 운동을 제대로 못 시키니까, 들어온 지 몇 달이면 근육이 퇴화돼 팔다리가 다 굳어버려요. 시설에 들어온 지 몇 달만 지나면 다리가 잘 안 벌어져서 기저귀 갈기도 힘들 지경이에요.”

노인이 침대에 누워 지내는 걸 금기시하는 덴마크나 독일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그들은 신체기능 저하를 걱정해 여러 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노인들을 끊임없이 침대에서 끌어내린다. 이런 차이는 결국 노인 한 사람에게 질 높은 돌봄 인력을 얼마만큼 배치하느냐에 달렸다. 사람값에 재원을 투자함으로써 ‘현재’의 삶의 질을 바꾸는 방식인 셈이다.

물론 우리 시설도 사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정해진 인력 기준 안에서나마 노인들을 애써 돌보는 곳도 적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인 재원 배치의 차이는 이 순간 삶의 질을 턱없이 방기한다.


감세 법안과 함께,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 투자에 감세 기름을 붓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경기의 불을 지피겠다는 내용이다. 아랫목에 불을 지피면 윗목도 온기가 전해져 오리라는, 오래 들어온 얘기다. 사람값에 투자하는 일은 뒷번호로 밀렸다. 현재의 삶은 그저 견디는 것으로 지나가 버린다. 정작 인내의 열매는 누구의 것일까.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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