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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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내년이 걱정입니다, 기업들이 모두 씀씀이를 줄인다고 하니.” 최근 한 송년행사에서 만난 사회공헌 분야의 엔지오 관계자가 걱정스럽게 털어놓은 말이다. 요즘 사회공헌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표정이 어둡다. 주요 기부자들인 기업들이 금융위기에 이은 실물경제 비상으로 ‘긴축 경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업들과 손잡고 사회공헌 사업을 벌여온 엔지오들에게도 큰 주름살이 예상된다. “대다수 기업들이 20∼30%의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어, 사회공헌 사업에도 여파가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4대 그룹에 속한 한 대기업의 사회공헌 팀장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지금의 추세라면 상당수 기업의 경우 내년도 사회공헌 예산이 올해에 비해 두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하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전세계적인 사회책임 경영의 추세를 타고 최근 몇 년 동안 기업 사회공헌 예산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큰 폭으로 늘어온 것과 대비된다. 연말인데도 대기업들의 이웃돕기성금 소식이 뜸한 것은 예고편과 같다. 예년의 경우 연말연시에는 다른 기업보다 조금이라도 성금을 더 내고, 회사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기업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많이 다르다. 오히려 성금을 가능한 적게 내면서도 회사 이미지 손상을 피하려는 기업들 간의 눈치보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이웃돕기성금 목표를 지난해보다 5% 정도 많은 2085억원으로 잡았는데,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 사회공헌이 위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여년 전인 외환위기 직후에도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기업들의 사회공헌 예산이 줄어들고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기업이 제대로 유지돼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공헌도 가능한 만큼 경영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당연히 기업 사회공헌의 필요성도 더 증가한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로 잘 알려진 유한킴벌리의 이은욱 부사장은 “경영이 좋을 때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가 경영이 나빠졌다고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책임과는 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사회봉사단 관계자도 “경영이 어려울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때 소비자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1일 금호아시아나가 이웃돕기성금 30억원을 대기업에서는 가장 먼저 기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금호가 지난해와 같은 규모의 거액을 형님 격인 상위 그룹들보다 먼저 선뜻 내놓은 것은 재계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최근 ‘경제위기 시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경제위기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까지 위협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때에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방법이 비단 사회공헌만은 아닐 것이다. 내년에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을 대비해 많은 경영자들이 마음속으로 감원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구본무 엘지 회장은 계열사 사장들에게 “경제가 어렵다고 사람들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훌륭한 경영자는 사회문제의 해결과 동시에 이윤을 추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한국의 경영자들도 전략적 사회책임 경영의 시험대에 올라선 듯하다.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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