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20 19:56
수정 : 2008.11.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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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우 선임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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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를 보면서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었다. 무어의 카메라 앵글은 중산층도 아프면 치료비 때문에 파산에 내몰리는 사회와 돈이 없어도 누구나 치료받는 사회, 두 세계의 모습을 훑을 뿐 그 뒷면을 비추진 않는다. 무어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위한 재원, 곧 더 많은 사회보장과 세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금은 무어에게 또다른 ‘식코’였는지 모른다.
평범한 사람들의 조세 저항감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정부의 예산 낭비다. 연말만 되면 파헤쳐지는 도로를 볼 때, 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하는 스포츠토토기금을 유인촌 장관이 제멋대로 쓰는 것을 볼 때 누가 세금을 기꺼이 내고 싶겠는가. 또 하나는 세금 징수의 공평성이 무너졌다고 느낄 때다. 가령 고액 세금 체납자들이 고소득자나 부동산 부자라는 뉴스를 볼 때, 왜 나만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느냐는 억울한 생각이 누군들 치밀어 오르지 않을 것인가.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은 이런 정서를 악용해 가진 자들이 제 몫만을 챙기겠다고 나설 때다. 종부세 세대별 합산이 위헌 결정이 나던 날, 한나라당 의원들은 “세금폭탄으로 인한 가족해체의 위험성이 줄었다”며 환호했다고 한다. 그들의 눈엔 저소득층의 가족해체 비극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뜨거운 세금논쟁의 정점엔 부유층에 대한 과세가 있다. 오바마는 부시 정부 내내 진행된 ‘승자독식’으로 양극화가 심화한 미국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연간 25만달러 이상을 버는 상위 소득자에 대한 증세와 중산층 서민에 대한 감세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였고 미국 국민은 그를 선택했다.
이명박 정부의 세금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위기가 닥치자 애당초 목표였던 감세안을 ‘욕을 먹어도’ ‘사력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의 분석을 보면, 법인세 감세의 65.8%를 0.1257%의 기업이 독차지하고, 소득세 납세자의 3.6%인 연봉 1억1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자가 소득세 감소분의 58.5%에 이르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또한, 국민 0.7%에 부과되고 있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서 33%로 대폭 낮춰진다. 저소득층과 서민 중산층의 복지를 위해 쓰일 국가예산 재원을 돌려 고소득층 대기업 부동산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부유층을 위한 감세 선물’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가 감세와 부양책을 병행 추진하면서,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런 상황이 오면 적자재정 편성과 공기업 매각도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감세로 부족해질 세수를 메우기 위해서 국가재산까지 팔아치울 셈인가.
경제위기가 깊어지면서 기업부도와 구조조정 그리고 이에 따른 감원 한파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연간 20만달러를 버는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 조처만 철회해도 미국 전역에 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폴 크루그먼의 주장은 최근 정부의 경제대책과 감세논쟁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정부는 23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철회하고 그 재원을 돌려 실업대책과 사회안전망 강화에 정녕 쓸 수는 없는 것일까.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며 복지예산 증액을 거부해온 정부의 강변은, 지금 당장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 문을 닫는 사람에겐 가혹한 이야기일 뿐이다. 경제위기로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는 지금은, 부자 세금을 줄이는 것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게 먼저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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