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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06 20:10 수정 : 2008.11.06 20:10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부시 시대의 미국은 ‘오만한 제국’이었다. 오바마 진영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브레인 가운데 하나인 이보 달더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를 ‘고삐 풀린 미국’으로 묘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교토의정서 등 다섯 가지 국제조약에서 그것도 ‘무례한’ 방식으로 탈퇴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사일 문제 등 북한과의 사이에서 이뤄놓은 성과들을 걷어찬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유린과 애국법으로 스스로 자랑해 온 시민적 자유마저 침해했다. 부시 외교는, 적어도 2004년까지의 부시 1기 외교는 오만과 독단으로 비난받을 만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부시 시대 8년이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오바마의 시대가 가능했다. 한 사람의 오만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 위크>의 파리드 자카리아 국제판 편집장은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외교정책에서 매케인이 호전적이라면 오바마는 냉정하다. 오바마는 국제 공조 강화와 적극적인 외교를 주창한다. 그는 미국이 누구와도 적이 될 필요가 없는 세계를 꿈꾸며 우리가 현재 직면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구와도 협력하려 한다.” 미국 대선 투개표 결과가 나온 5일 북한 <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제2200부대와 534군부대 직속 구분대(대대급 이하 부대)를 시찰했다고 전했다. ‘양치질하는 수준’에서 얼마 전엔 축구를 관람하더니 현지 지도로 건재를 드러내려 한 것이다. 오바마에게 ‘난 너를 만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닐까?

오바마에게도 북한은 기회다. 이라크·아프간과는 다르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북핵 불능화는 부시가 남긴 긍정적 유산이다. 그는 앞선 정부들의 성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부시가 했던 것을 이어 받고, 클린턴이 추진해 합의 직전까지 갔으나 부시가 무시했던 미사일 협상을 타결지으면 된다.

임기말의 역사적인 방북과 관련해 클린턴은 회고록 <나의 인생>에서 “북한을 방문했던 올브라이트는 내가 가면 미사일 협상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국방부와 공화당 등 보수세력으로부터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배치에 대한 결단을 요구받고 있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반발했다. 럼스펠드위원회의 북한 미사일 위협 보고서가 예측했던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국가미사일방어 강행의 명분이 됐다. 반대로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 타결은 그 배치를 유보할 수 있는 근거였다. 당시 핵은 제네바 합의로 동결되고 있었다. 미국이 볼 때 핵보다는 미사일 위협이 직접적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미사일 협상 타결을 북-미 관계 정상화의 관건으로 본 이유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취임 직후인 2001년 3월 기자회견에서 “일부 유망한 요소들이 (협상) 테이블 위에 남겨져 있다”며 ‘클린턴 팀이 떠난 곳’에서 시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말한 ‘유망한 요소’들은 합의 직전까지 갔던 ‘미사일 협상’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곧바로 취소됐다. 핵보다 더 직접적이고 위협적인 미사일 문제가 왜 무시됐는지는 곧 드러난다. 몇 달 뒤인 12월 부시 행정부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러고는 천문학적 비용 등 수많은 논란에도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을 강행했다. 이제 미국은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을 되살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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