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0.30 19:47
수정 : 2008.10.30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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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우 선임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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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상상력에 대한 예찬이 쏟아진다. 기업의 고객가치 창조는 상상력과 공감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 기업의 대표들은 최고경영자라는 말 대신 최고상상력책임자(Chief Imagination Officer)로 불리기를 바란다.
상상력에 대한 찬사가 넘치는 것에 견줘 상상력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빈약하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몇 가지가 있다. ‘호기심을 잃지 말라.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하라. 당연한 것을 의심해 보라. 엉뚱한 말에도 귀를 열어 두라. 놀이와 경험을 통해 직관을 자극하라.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
그런데 상상력은 단지 기발하고 엉뚱한 것일까. 미술평론가에서 목수로 변신한 김진송씨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오해라며 “상상은 무수히 많은 경험과 사고의 틈 속에서 인식을 넓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성으로 포장된 폭력, 합리성으로 위장된 불합리가 현실세계에서 위력을 떨칠 때, “상상의 공간은 비이성과 비합리를 통해서 현실 속에 은폐된 억압, 폭력, 불합리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김진송씨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라는 광고와 달리 현실은 생각을 누르고 있다. “넌 참 좋은 기계인데 요즘은 살인기계로 보여. 나는 심란해. 내가 이 기계를 몰게 될 수 있을 텐데, 실수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지난 9월 개인 누리집에 F-15K 전투기에 대한 단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가 퇴교당했다. 보수언론과 보수단체는 “반전 좌파사상이 심각한 지경”이라며 또 한바탕 색깔론을 쏟아냈다. 우국의 충정을 멈추고 잠깐 생각해 보자. 평화를 지키자면 폭격당하는 자의 아픔을 생각해 보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 군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자질이 우수하다고 자랑해온 국방부는 군인들에게 읽지 말아야 할 책까지 강제하고 있다. 군 법무관 7명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23종 지정이 “군인들의 행복 추구권,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자, 국방부는 이들을 징계할 태세다. 논란의 와중에 이상희 국방장관은 “영외에서 보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최소한의 생각의 자유까지 옥죄고 있는 곳은 어디 병영뿐일까. 광우병대책회의 팀장에게 보석 결정을 내리고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시법 10조를 위헌제청한 판사는 보수언론으로부터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위협까지 받았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법률이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가라는 최소한의 물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흑백논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상통제의 얼굴마담’인 국가보안법이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검찰은 대안학교 교사가 역사 시간에 강의 교재로 활용한 역사배움책이 이적표현물에 해당한다며 이 교재에 실린 오월의 노래와 광주시민군 궐기문까지 공소장 내용에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빚고 있다.
상상력을 북돋는 것은 좋은 일이다. 상상력을 꽃피우고 싶다면 흑백논리에 찌든 문화와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상상력 키우기의 첫째는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놔두는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상상력은 상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존재를 바라볼 때, 생각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각종 기제를 걷어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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