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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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감기에 가장 좋은 약은 쉬는 것이다. 광주의 한 병원 의사는 감기 환자가 찾아오면 감잎차를 많이 마시고 푹 쉬라고 한다. 주사나 약 처방은 거의 하지 않는다. 특별히 증세가 심해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시 올 필요가 없다고 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고 얘기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운동법도 알려준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환자를 앞에 두고 운동법을 가르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아도 10분, 길면 30분이 넘는다. 전화 상담이나 운동법 교육은 의료 행위가 아니다. 돈이 안 된다. 병원 운영이 쉽지 않다. 한 여성 외과의사는 몇 해 전부터 암 재발을 막기 위해 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암 환자는 모두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는 면역력 저하와 관련이 있다. 그는 일과 뒤 두 시간 가량 상담을 했다. 나중엔 가족도 불렀다. 정신적인 상처와 스트레스에는 주위 사람 특히 가족이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병원 수익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대전의 한 한의사는 척추측만증 환자를 체조를 통해 고쳤다. 척추에 철심을 박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그 환자는 보약을 짓기 위해 한의원을 찾았다. 잘못된 자세를 오래 유지한 결과 근육이 심하게 뒤틀려 그로써 척추가 휜 것으로 보였다. 근육을 이완시키면 척추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환자가 믿지 않았다. 그는 점심시간마다 그 환자를 한의원으로 불러 30분씩, 두 달 가량 체조를 함께했다. 동작이 몸에 익자 환자는 집에서 혼자서도 체조를 할 수 있었다. 석 달이 지나자 척추측만증이 바로잡혔다. 한의사가 번 돈은? 거의 없다. 아토피 치료를 하는 어떤 한의사는 진료 시간 때문에 고민을 한다. 한의학에서는 아토피 치료를 위해 몸 안의 독소를 내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독소 유입도 막아야 한다. 깨끗한 먹을거리를 먹고, 옷·잠자리·비누·침대 등 유해 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을 바꿔야 한다. 냉온욕·풍욕·마사지 등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를 제대로 알려주려면 한 시간도 모자란다. 시간이 닿는 대로 입이 닳도록 얘기하지만 벌이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고혈압·당뇨·심장병 등 성인병을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료인들이 흰 가운의 권위를 갖고 사람들에게 병 안 걸리고 사는 생활습관을 가르치면 질병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지만 그런 의료인들은 거의 없다. 건강 교육이나 상담을 해서는 생활비조차 벌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 식품영양학자로부터 들은 일본의 어느 소아과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도쿄에 있는 그 소아과에는 의료기기가 없다. 직원은 의사와 아이를 돌보는 여성이 전부다. 의사는 자녀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부모에게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법에 대해 한 시간쯤 설명을 한다. 치료가 아니라 교육임에도 의사는 적지 않은 진료비를 받는다. 이제 우리도 의료인들의 치료 행위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상담이나 교육도 중요한 의료행위에 포함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많은 훌륭한 의료인들이 병원 운영에 대한 고민 없이 환자 스스로 몸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게 될 것이고 과잉진료나 약물남용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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