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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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이른 아침, 라디오를 들었다. ‘시절이 어려우니, 다함께 나랏일에 협조해 달라’는 대통령 말씀이 흘러나온다. 귀에 꽂힌 단어는 ‘신뢰’ ‘애국’ ‘각자의 역할’ 정도…. 기업은 (어려워도) 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은행은 (못 미더워도) 어려운 기업을 도와주며, 야당은 (동의하지 않아도) 정부 입법을 통과시켜 주고, 국민은 (나라 생각해) 지갑을 열어 달라 한다. 반갑잖은 고통 분담 고지서를 뜯고 보니, 그저 허울 좋은 애국심 타령에 가깝다. 청와대는 “아날로그 화법으로 아이티 시대의 감성을 어루만졌다”고 하는데, 이에 가슴 뭉클해진 기업이 투자를 결심하고 은행이 대출 도장을 꽝꽝 찍어 주리라 믿는 것인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대통령이 굳이 나라 사랑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즘은 다들 나라 걱정을 한다. 안 할 수가 없다. 아이엠에프 시절 톡톡히 경험했지만, 정부가 나라를 아주 말아먹으면 당장의 내 삶이 고통스러워진다. 수출입 업무를 하는 친구는 환율이 내려갈까 싶어 대금 결제를 한 달 미뤘다가 5천만원을 까먹고 끙끙댄다. 미국에 아이를 조기 유학 보낸 이웃은 당장 송금할 금액이 턱없이 늘어나 한숨을 쉰다. 신문·방송에선 위기에 몰린 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얘기가 날마다 이어지는데,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게다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란 게 더 씁쓸하다. 1997년 아이엠에프 총재가 서울로 날아오던 달에 시작한 내 사회부 기자 생활은 암울한 풍경들로 도배질돼 있다. 밤과 새벽의 경찰서엔 아이엠에프 생계형 범죄자가 넘쳐났고, 명퇴와 정리해고로 눈물 바람을 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어쭙잖게 심경을 묻는 일이 이어졌다. 이때 무너져 끝내 재기하지 못한 이들을 아직도 취재 현장에서 마주친다. 사람들은 살인적인 고금리를 견뎌내고, 정리해고와 명퇴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돌반지를 팔아가며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이후 청년실업, 무한 경쟁, 사오정, 오륙도 같은 단어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고통을 분담했다. 고통의 하중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더니, 또 나라 사랑의 계절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나마 10여년 전 외환 위기 땐 아이엠에프 서슬에 재벌 등 경제 주체들이 저마다 책임을 나눠지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번엔 도무지 그런 기미도 안 보인다. 대통령이 고통 분담을 요구하면서도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요즘에, 과연 누가 (경제를)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 세계경제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만 독야청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라며 은근슬쩍 책임 소재마저 감춰버린다. 정부의 고통 분담 고지서가 통하려면 나라 사랑 타령을 할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실정 책임을 묻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소통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금모으기 운동이 어느 정도 통했지만, 이번엔 장롱 속 달러 모으기를 얘기했다가 욕만 실컷 먹었을 따름이다. 최근 개봉한 <고고70>이란 영화를 보면, 정치적 불안의 책임을 엉뚱하게 향락 문화로 돌리던 유신 시절의 기막힌 풍경들이 되돌아온다. 록 그룹들을 경찰서에 붙잡아다가 머리를 박박 밀고, 구호를 복창시키는데, 그 구호가 “새사람이 되자!”이다. 경제 위기를 구실로 유모차 시위대를 ‘아동학대죄’로 몰고, 사이버모욕죄 신설로 인터넷 좌파 세력의 준동을 윽박지르는 시절이다. 소통 대신 애국심을 말하는 대통령의 라디오 방송이 “새사람이 되자!”는 구호로 들렸다면, 뭐 그리 이상할까.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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