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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9 20:19 수정 : 2008.10.09 20:19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그들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고 ‘페어’를 주장할 줄 알 때, 페어플레이를 시행해도 늦지 않다.”

요즘 집권세력의 행태를 보면서 새삼 와닿는 루쉰의 말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국감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에 문제가 있다면,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만큼 전 정권의 문제 아니냐”고 강변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6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정권의 좌편향 정책으로 모든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고 색깔론을 덧씌워 ‘네 탓’ 타령을 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금융 불안에 대해 원인을 제대로 짚고 신뢰받는 대책을 제시하기는커녕 남 탓만 하고 있는 이들, 책임 전가의 달인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을 코앞에 두고서도 당시의 금융위기가 궁극적으로 금융실명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던 사람들과 기막히게 닮아 있지 않은가.

언론계의 풍경도 역사의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와이티엔> ‘낙하산 사장’ 구본홍씨는 결국 해고라는 칼을 휘둘렀다. 회사 쪽은 노조 때문에 시청률도 저하되고, 광고매출도 줄어들고 있다며 징계의 불가피성을 항변했다고 한다. 적반하장의 극치다.

책임전가와 적반하장의 달인들은 촛불시민들을 탄압하는 것을 넘어서 ‘악법’ 논란을 빚고 있는 법안도 강행할 태세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최진실법’, 국정원의 합법적 감청을 위해 통신업체의 감청 설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부유층을 위한 종부세 완화 등이 그것이다.

법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게 품위 있는 사회의 전제조건이라고 한다. 법과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할 때 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간추려 본, 베트남전쟁에 대한 불복종 행동을 살펴보는 것도 참고가 될 수 있겠다. 몇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800명의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대통령에게 전쟁에 대한 항의 표시를 하였다. 수천 명의 국민들은 납세를 거부했다. 평화를 위한 단식투쟁들이 벌어졌다. 브라운대 졸업식에서는 내빈으로 참석한 헨리 키신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졸업생의 3분의 2가 등을 돌려 앉았다. 전국출판문화상 시상식에서 한 소설가는 부통령 허버트 험프리에게 이렇게 외쳤다. ‘부통령, 아이들이 베트남에서 불타 죽고 있습니다. 모두 당신과 우리의 책임이라고요.’ 극작가 아서 밀러 등 저명한 작가들이 백악관 초정을 거절하였다. 가수 어사 키트는 대통령 부인이 백악관 뜰에서 개최한 파티에 참석하여 전쟁 반대 성명을 발표하였다. 런던에 체류 중이던 청년 두 명이 미 대사관에서 주최한 독립기념일 기념 축하 연회에 쳐들어가, ‘베트남에서 죽은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하여’ 잔을 들자고 제안하였다. 4에이치클럽 상을 받기 위해 백악관에 초청된 10대 청소년들이 대통령에게 전쟁 종식을 요청하였다.”

시민들의 저항이 정부 정책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페어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권력의 전횡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음’을 밝히는 작은 실천들이 변화의 씨앗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는 혼자서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야.” 영화 <안녕? 허대짜수짜님!>에서 정규직 노동조합 대의원인 허대수가 비정규직 문제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떨쳐 버리려는 듯 악을 쓰며 내뱉는 대사다. 시민들의 연대와 공감이 소중하게 들리는 시절이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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