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9.25 20:43
수정 : 2008.09.2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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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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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월가의 위기는 금융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자기파괴적 재앙을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이를 방치하고 결과적으로 조장했다. 지금 부시 행정부의 시장개입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구원을 위해 나선 건 아닐까? 미국 행정부가 내놓은 부실채권 처리 전문기구 설립은 원인에 대한 처방은 아니다. 잔치는 끝났으니 국민이 설거지하라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구제금융인지가 불분명하다. 최고경영자(CEO)들은 ‘나 그만둘게!’ 하고는 거액 연봉을 챙겨 떠나면 그만인가? 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한 독점규제법인 글래스-스티걸법은 이미 형해화되긴 했지만 이번엔 아예 휴짓조각이 됐다. 상업은행(뱅크오브아메리카)의 투자은행(메릴린치) 인수와 투자은행의 상업은행화(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용인하는 조처를 취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중소 금융기관의 도산 속에서 금융자본은 공룡화하고 독점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는 정부의 감독과 규제 조처는 안 보인다.
1989년 저축대부조합(S&L)의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와 뒤이은 경기침체는 80년 등장한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인 ‘레이거노믹스’에 책임이 있다. 이번 월가의 위기는 그 연장선에 있으며, ‘부시노믹스’도 그 책임을 져야 한다. 2000년 ‘닷컴 거품’이 꺼지자 돈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2001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규제완화로 이를 조장했고, 저금리와 주택가격 상승을 바탕으로 개인들은 앞다퉈 소비지출을 늘렸다. 7년여 미국 경제는 흥청망청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주택 담보대출이 이를 뒷받침했다.
19일 부시 대통령은 폴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대동하고 나와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위기극복을 위해 ‘전례 없는’ 단호한 조처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해결사인 양 한다면 그건 위선이다. 지난 8년 그는 어디에 있었나?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은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는 잠시 덮어두고 경제만 봐도 부시의 8년은 끔찍하다. 특히 클린턴의 8년과 비교하면 극과 극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단기 경기부양, 장기 재정적자 감축, 시장개입 확대를 통해 아버지 부시 시절의 경기침체를 극복했다. 92년 선거에서 아버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한 것도 경제문제 때문이었다. 93년 클린턴 취임 초 2550억달러였던 재정적자는 2001년 1280억달러의 흑자로 반전됐다. 지금 재무부는 2008회계연도의 재정적자를 3894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구제금융으로 내년의 미국 재정적자가 1조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전망을 전하고 있다.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는 2004년 부시 대통령을 이렇게 비난했다. “미국을 위협하는 것은 반미주의도, 사담 후세인도 아니고, 바로 부시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부시를 다시 선택했다. 지금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비극과 함께 잘못 선택한 지도자가 8년 동안 미국과 전세계에 어떤 재앙을 몰고 왔는지를 보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에겐 또 우리의 문제가 있다. ‘이명박은 어디에 있는가?’ ‘엠비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의 철학을 추종한다. 부시의 미국처럼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뽑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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