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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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문자가 철커덕 왔다. 매달 나가는 에이아이지(AIG) 보험료가 3만 얼마 결제되었다는 내용이다. 짜증이 확 치밀었다. “에이아이지 디링~디링~디링~” 홈쇼핑을 보다 미래 대비 의무감에 불현듯 가입했던 보험이다. 그때는 흐뭇했던 결정이 오늘날 미국발 금융위기에 휘말리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해 10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년지기 친구가 급작스런 결혼 선언을 했고, 가을 바람은 스산했으며, 나는 뭔가 인생 불안을 덜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감행한 일이 보험 가입과 펀드 투자였다. 나보다 약간은 더 부지런했던 또다른 친구의 부추김도 작용했다. 경제신문을 열심히 읽으며 재테크 입문 과정을 밟던 친구는 손해만 보고 있던 일본 펀드를 부숴 중국이나 인도 펀드 또는 둘을 합친 친디아 펀드로 갈아타겠다고 했다. 사실, 아이티 거품에 ‘바이 코리아’가 날리던 시절도 구경만 했고, 원자재 펀드로 돈을 두세 배 튀겼다는 주변 소문에도 무심했다. 그런데 코스피가 2000대에 안착한다니, 이참에 생활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동안 재테크 정보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결국은 잘나간다는 차이나 펀드랑 남들 다 한다는 펀드 몇 개에 소액 자산을 쪼개 넣었다. 홍콩 증시를 따라간다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샀다. 수업료를 치르지 않으면 얻는 게 없는 법. 복잡한 파생상품 설명에 질리자, 호기롭게 그냥 질렀다. 잠깐은 재미도 봤다. 수익률 예상 조회를 해 보면, 하룻만에도 몇 달치 은행 이자만큼이 불어 있었다. 어디서 그런 돈이 오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중국 경제가 자동차를 팔아 돈을 버는지, 가짜 시멘트나 멜라민을 가득 탄 우유로 수익을 내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펀드 투자라니 …. 그런 어색한 주제는, 에헤라, 민망스러웠다. 돌이켜보니 참 희한하다. 어린시절 어른 팔뚝만한 설탕 붕어를 뽑으려다 한달 용돈을 까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요행수에 목을 매는 쪽은 아니었다. 로또 열풍이 불 때도, 무료한 김에 딱 한 차례 천원어치를 해 봤을 뿐이다. 그런데 펀드 광풍 막차를 올라타면서도 뾰족한 경계심이 없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돈 만원짜리 물건을 사려고 상품평을 수십개, 집착증이 도질 땐 백여개씩 훑어보면서도, 펀드가 왜 돈을 벌어주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펀드 운용사의 신인도나 펀드 누적 수익률, 미국이나 중국 증시 뉴스 등을 참고했을 뿐이다. 물론 나는 개중 어설픈 개미 투자자였겠지만, 상당수 보통 사람들도 펀드 수익이 발생하는 근원을 따져보는 대신 펀드사 이름값에 휘둘렸을 것이다. 국민 노후 자금을 까먹은 국민연금도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회사에 돈을 맡겼고, 미국 유명 금융사의 펀드 상품과 주식이 포트폴리오에 편입되는 건 피하기 어려웠다”고 답변하는 판국이다.그래서 그 결과는, 미국발 금융 대공황이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상품 생산과 거래를 제쳐두고 돈만으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파생 상품의 수익 잔치는 거대한 사기극이었음이 들통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식 시나리오를 금과옥조로 금융 규제 허물기를 밀어붙인다고 한다. 고액 연봉을 삼킬 주역과 연출자보다는 대다수 엑스트라와 관객들의 고통이 더 클 것은 불보듯 뻔하다. 애써 잊으려 했던 ‘판도라의 계좌’를 열었더니, -45%까지 까인 펀드 상품도 눈에 들어온다. 속이 쓰리다. 수업료 호되게 치렀다.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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