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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2 20:38 수정 : 2008.09.02 21:43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삶은 불안으로 일렁거린다. 젊음이 있고, 건강이 있고, 배움이 있고, 직장이 있고 …. 이 모든 것에 대해 ‘당연한 척’ 살아가지만, 실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막연히 ‘이쯤은 되리라’ 여겼던 내 삶이, 내 노력이나 성실성, 삶에 대한 내 성의와 상관없이 고꾸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취재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과 맞닥뜨린다. 부·명예·지위·학식처럼 자산이 많은 이도 만나지만, 병고·가난·실직·장애처럼 고통이 더 많은 이도 적잖이 마주친다.

한때 수십명 직원을 거느린 주물공장 사장이었지만, 외환위기 부도로 땅굴 같은 쪽방에 갇혀버린 50대 사내, 유명 건설사 지사장까지 지냈지만 말년 사업 실패로 기초수급자가 된 70대 노인, 유학생이던 남편과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리라 여겼지만 희귀병 아이 수발에 가난과 눈물만 남은 40대 여성 ….

이들에게 삶의 어느 순간 판단 착오나 위험 신호에 눈감는 둔감함이 있었을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과오는 사람이기에 있을 수 있고,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기에 …”라는 고통스런 독백을 탓하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같거나 더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다만 운이 좋아서 함정을 피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을 적절히 통제하고 관리할 수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함정에 빠진 이는 고통스럽고, 아직 빠지지 않은 이는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하느라 현재의 삶과 행복을 저당 잡힌다.

언젠가부터 믿을 건 내 가족과 재테크뿐인 세상이 됐다. 10년 적금이 2∼3년짜리 아파트 재테크, 아니 ‘아파트 투기’를 못 따라잡는다. 뛰는 집값에 휘둘려 대출 낀 아파트를 사고, 내 집만큼은 다시 집값이 뛰기를 고대한다. 대출 이자에 짓눌려도 다른 안전판을 찾기 어렵다.

아이들은 좋은 직장으로 이어진다는 국제중, 외고, 명문대 컨베이어 벨트를 타느라, 소중한 10대 시절을 소진한다. 부모는 아이가 올라탄 벨트가 멈추지 않도록 사교육비를 들이붓는다. 아마도 잠깐쯤 미래의 안전을 사들인 듯한 평안을 얻기도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대단히 선량하고 이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뼛속 깊이 악하고 끝없이 탐욕스럽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이들은 내 것이 위협받지 않는데 굳이 타인의 팔을 비틀고 싶어 하지는 않으며, 가끔은 위험에 처한 이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선의를 베풀기도 한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이런 선의를 극대화하는 것은 선의를 공식적으로 주고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함정에 빠지는 누군가를 위해 복지 제도를 만들고 사회보험 같은 연대의 안전망을 촘촘히 깔면, 누군가의 고통은 물론, 불안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정부 감세안이 나왔다. 내년까지 11조7천억원, 5년 이내 75조원의 세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대다수 월급쟁이들에게 월 몇 만원의 소득세를 깎아주긴 했지만, 상속세·법인세·양도세 등 감세 혜택의 큰 덩어리는 소수 부유층이나 일부 대기업에 집중됐다.

세금은 그저 공중에 흩어지는 돈이 아니다. 약자가 선의를 구걸하는 대신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선의를 주고받도록 하는 시스템의 연료가 된다. 내 수입이 끊겼을 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나와 내 가족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공짜로 나오지 않는다.

정부는 감세와 함께 재정지출 축소를 예고했다. 복지 지출 역시 칼날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세금 몇 만원을 덜어주고 불안의 비용을 ‘증세’할 셈일까.

정세라/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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