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21 20:55
수정 : 2008.08.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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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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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1992년 8월24일 서울 하얏트호텔.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와 최종현 선경(옛 에스케이) 회장이 마주앉았다. 김 후보는 선경이 따낸 제2 이동통신 사업권의 반납을 종용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사돈인 최 회장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끄지 않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며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회사 중역들은 실력으로 따낸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최 회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반납하는 결단을 내린다. “우리가 실력으로 사업권을 땄으니, 다음에 또 딸 수 있는 것 아니냐.”
다음해 재계 수장인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닥쳤다. 새 정부가 특혜 시비를 막고자 제2 이동통신을 단일 컨소시엄에 넘기기로 하고, 전경련에 컨소시엄 구성을 맡긴 것이다. 회장사인 선경이 욕심을 부리면 재계가 사분오열될 판이었다. 최 회장은 다시 결단을 내린다. 제2 이동통신을 포기하고, 대신 민영화가 추진되던 제1 이동통신을 4271억원이라는 거액에 사들였다. 중역들은 그룹이 망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통신을 그룹의 미래 핵심사업으로 생각한다면, 회사 가치를 지금보다 훨씬 더 키우면 된다”고 밀고나갔다.
최 회장은 에너지와 통신이 두 축인 에스케이 사업구조를 완성했다. 작은 직물회사에 불과했던 74년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의 비전을 내놓고, 80년 유공을 인수해 꿈을 이뤘다. 통신사업 진출도 10년 전부터 미래 성장동력을 준비한 그의 통찰력이 낳은 결과였다. 이렇듯 앞날을 내다본 전략가 최 회장도 생전에 말끔히 정리하지 못한 게 있었다. 수조원에 이르는 에스케이글로벌의 부실이다. 최태원 회장은 부친이 남긴 엄청난 부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해법을 찾았지만, 결국 2003년 ‘6개월 옥살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감옥에 들어가던 날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면회 때마다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보고받았다. 경영에 복귀한 뒤 재벌체제의 병폐인 ‘황제경영의 종식’을 선언했다. 그룹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도 없앴다. 대신 거수기에 불과한 이사회를 회사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정상화하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실천에 옮겼다. 젊은 재벌총수의 과감한 개혁에 세상은 놀랐다. 그 결과 에스케이는 불과 5년 만에 지배·재무·사업구조 두루 한 단계 격상됐다는 평을 받는다.
오는 8월26일은 최종현 회장의 10주기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추모서적에서 고인을 ‘10년 앞을 설계한 참경영인’이라고 기렸다. 10주기 하루 전인 25일은 공교롭게 삼성사건 항소심 첫 공판날이다. 이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기업이 무조건 이윤만 많이 내면 좋은 시대에서, 사회적 책임까지 다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는 큰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경영권 세습과 비자금 조성, 4조5천억의 차명주식과 계좌가 그 결과다. 이 전 회장은 경영에서 물러나고, 구조본을 해체했다. 그러나 삼성이 정말 바뀌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에스케이에서 보듯 전화위복의 열쇠는 잘못된 과거와의 단절과 신뢰할 수 있는 새 지배구조 정착이다. 삼성은 ‘황제’가 물러나고 구조본을 없앴지만, 그것을 대체할 새 지배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은 삼성을 뒤에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한다. 이 전 회장이 에스케이로부터 전화위복의 교훈을 제대로 배웠으면 좋겠다.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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