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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19 20:38 수정 : 2008.08.19 20:38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지는 사람한테 달렸다. 좋은 사람이 많으면 살기 좋은 시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도층이 훌륭하면 그들이 나라를 이끌던 시절이 좋아질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우리 역사에서 살기좋은 시절 가운데 하나가 요즈음 <한국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송되는 세종대왕 때다. 기억되는 인물이 많다. 세종 자신이 성군이었으며, 황희·맹사성·성삼문 같은 훌륭한 신하들이 그와 함께 나라를 이끌었다. 또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박연과 탁월한 과학자 장영실이 있어 문화와 과학 수준을 드높였다.

폭정으로 평가받는 시기에는 훌륭한 인물이 드물다.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건 지사들의 이름이 아름답게 기억되거나 개인의 부귀영달을 위해 곡학아세한 지식인과 모리배의 이름이 타산지석으로 전해질 뿐이다.

군사독재자 전두환과 그의 후계자인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대해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세종 때와 같은 덕망 있는 지도자는 없었다. 그 시절 기억 나는 이는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강제 해직을 주도한 허문도, 비뚤어진 충성심으로 이름난 장세동, 성고문 사건의 문귀동, 고문기술자 이근안,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킨 장영자씨 등이다.

반면, 선명하게 기억 나는 사람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선 지사들이다.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감사원이 재벌의 로비를 받고 투기·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감사를 중단한 사실을 세상에 알린 이문옥 전 감사관,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밝힌 이지문이 그런 이들이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 인물들로 기억될까. 물론 평가는 이르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잘못은 반성하고 바로잡으면 된다. ‘고소영’이나 ‘강부자’ 대신 열린 마음으로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면 된다. 그러면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덕망있는 인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또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한 최만리를 쫓아내는 대신 그와 논쟁을 벌인 것처럼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귀를 열고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지라.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 한 번 바꿔 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대통령이 갔던 길을 뒤따르는 듯이 보인다. 군사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언론 장악이다. 이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다. 공영방송은 정권과 코드를 맞춰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로 임기가 남은 사장을 몰아냈다. 집권당 핵심 인사들은 다음 차례가 <문화방송>이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 보도전문 채널 <와이티엔> 사장에는 이미 대통령 후보자 시절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씨를 임명했다. 인터넷 세상에도 재갈을 물리려 시도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명박 정부에도 기억될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구본홍 와이티엔 사장,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 등이다. 적어도 내게는 유쾌한 이름들이 아니다. 정권의 주구라고 지탄받는 집단도 생겨났다. 검찰, 경찰, 감사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명박 시대를 규정하는 인물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덕 있고 실력 있는 인물들이 활약한 시대로 기억될 것 같지 않다. 힘있는 자들이여,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권복기 노드콘텐츠팀 기자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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