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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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풍경 하나 “8월4일부터 국가인권위에서 장애인 20여명이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장애인 복지 예산이 지디피(GDP)의 몇 프로를 차지하는지 혹시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국회 민생안정대책특위에서 정하균 친박연대 의원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모를 수도 있다. 아니, 모를 만하다. 강 장관은 너무 바쁘다. 지금은 270조원대에 이르는 내년도 예산·기금 요구안을 주물러야 한다. 장애인 예산이래야 아주 미미한 부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환율에 물가에 모든 게 혼비백산인 상태가 아닌가. 그래서일까, 정 의원은 친절했다. 오이시디 회원국의 장애인 예산은 평균잡아 지디피의 2.5% 정도 된단다. 우리 나라는 어떨까? 0.28%란다. 장애인들이 인권위 복도에서 열흘 가까이 단식을 하고 있는 건 예산 확대가 간절하기 때문이다.보건복지가족부는 내년도 장애인 예산 요구안을 5918억원으로 냈다. 올해 6730억원보다 대폭 줄어든 규모다. 기획재정부가 10% 감축 편성 지침을 내린 탓이다. 복지부는 이후 905억원의 추가 요구안을 냈지만, 고스란히 반영된다 해도 장애인 예산은 전년보다 1.38% 늘어나는 데 그친다. 이런 식이면 오이시디 평균에 이르는 데 166년이 걸린다고 한다. 도무지 기약 못할 일이다. 장애인들은 지난달부터 폭염과 빗줄기 속에 아스팔트 시위를 해왔다. 이제는 곡기까지 끊어가며 ‘살아갈 권리’를 묻고 있다. 그러나 바쁜 정부의 답변은 늘 “재정사정이 허락하면 빨리…”일 따름이다. #풍경 둘 지난 주말, 서울 중랑구의 한 어린이집에는 첫돌도 안 된 아이 두 명이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엄마들은 둘 다 미용실에서 일하는데 밤 11시가 되어야 아이를 데리러 온다. 일하는 여성의 육아는 힘겹기 마련이지만, 저소득층 맞벌이 여성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대개는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인 탓에 야간·주말 근무가 밥먹듯 이어진다. 게다가 친정이나 시댁도 먹고살기에 바쁘다 보니, 사적인 육아 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식당과 공장에 일하러 다니는 엄마 아빠들은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속을 태운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엄마랑 영어 조기교육을 다닌다는 것은 머나먼 딴나라 얘기다. 강남 엄마들은 월 수십만원을 더 내고라도 각종 특강 프로그램을 연계해주는 고급 보육시설을 원한다지만, 이들은 기본만 해도 좋으니 일을 마칠 때까지 아이를 봐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저소득층 아이를 주로 돌보는 이아무개 원장은 “야간·주말 보육 확대는 저소득층에 가장 간절하다”며 “요즘은 엄마들이 기저귀도 싼 걸로 바꿀 만큼 어려운 걸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내년도 보육 예산으로 1조5074억원을 요구했다. 기획재정부가 처음 한도를 박하게 준 탓에 올해 1조4178억원에서 크게 늘려잡지 못한 액수다. 대통령이 대선 과정과 인수위 시절 밝힌 보육 복지 확대를 추진하기엔 턱없이 못 미치는 규모다. 복지부는 저소득층 차등 보육료 지원 확대 등을 위해 5300여억원을 추가로 요구해 놓았지만 살벌한 예산 부처와의 싸움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먹고살기 바쁜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지도 못한다. 말 못 하는 아이들 역시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튼 영세 보육시설에서 힘겨운 여름을 견딜 뿐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너무나 바쁜 정부에 묻는다. 도대체 알고는 계십니까? 정세라 사회정책팀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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