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우 편집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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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 때 읽어 보라며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했다는 책이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국정목표를 이뤄가자는 불굴의 의지도 전해졌을 법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처칠은 파시즘과 싸워 이겼는데, 이 대통령은 어떤 걸림돌을 돌파하고 싶은 걸까. 그럴 리야 없겠지만 스스로 부른 국정난맥에 등 돌린 민심과 싸우겠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진영논리가 불볕더위보다 더 기승을 부린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조·중·동보다는 중립적이었던 <한국방송>. 그런데 이 정권은 편향방송 책임을 묻겠다며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 압력을 전방위로 가하고 있다. 공영방송 사장은 자기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인가. 독선과 오만의 정치가 거듭되면서, 비판세력은 배제되거나 주변화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 생살을 찢어내는 권력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통합은 멀어진다. 편가르기의 첫 풍경은 사회 중추를 전리품처럼 자기 사람들로 채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대통령의 사람들, 권력의 낙하산은 행정부뿐만 아니라 공기업·금융기관·연구소·방송사·지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투하되고 있다. “그대가 권력을 잡으면 날 기억해줘/ 날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줘/ 날 감사원장으로 임명해줘/ 난 모든 보직을 마다 않지/ 부동산 관리인/ 우체국장/ 도로공사 사장/ 날 한 나라의 대사로 임명해줘/ 그대가 좋다면/ 날 안쿠드 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임명해줘/ 최악의 경우라도/ 날 공동묘지 관리소장으로는 임명해줘.” 칠레 시인 니카노르 파라의 풍자시 ‘양상군자의 변’이다. 2008년 대한민국에서 시는 현실이 되었다.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면서 흑백논리와 이분법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방송국을 점령한 마귀, 인터넷을 사용하는 원수 마귀와 싸워야 한다!” 조용기 목사가 부시 환영 기도회에서 목청을 높여 했다는 말이다. 마녀사냥의 성전에 나서자는 선동으로 들린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만, 합리적인 사유나 이성적인 고민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한국판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와 대외정책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침묵으로 몰아넣었던 미국판 원본을 뛰어넘는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이명박 정부는 인권을 존중하라는 국제사회의 권고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촛불집회 진압 때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라는 국제앰네스티의 의견만 묵살한 게 아니다. ‘유엔 인권옹호자 선언 비준국’에 걸맞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야간집회를 불허하는 현행 법률을 개정하라는 아시아인권위원회의 권고도,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라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도 외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아직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영논리에 편승한 권력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국정을 일사불란하게 운영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에 재갈을 물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라는 둘로 갈리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비판이란 것이 별로 달가운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인체에서 고통이 하는 일과 똑같이, 잘못된 상황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처칠) 고집불통 처칠은 돌파의 리더십만 남긴 게 아니다. 국민이 소유하는 정부를 원했던 처칠은, 자기 세력과 진영에 빠져 민심과 충돌하는 정부를 뭐라 이를까. 정태우 편집1팀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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