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31 19:54
수정 : 2008.07.3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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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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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만났을 때 이해 못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이건 아무래도 양국간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탓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경제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국을 20세기 들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선 거의 유일한 국가로 평가하는 그들로서는 한국 경제 위기론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를 돌아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5개월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쉼없이 터졌다. 이제 이름도 잊어버린 숱한 인사파동과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정부의 언론장악 음모, 금강산 관광객 피격, 독도 영유권 분쟁 등등. 모두 중요하지만, 눈보라와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간 뒤 남는 것은 결국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다. 이는 촛불 끄기용 위기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태그플레이션과 제3차 오일쇼크에 대한 경고가 쏟아진 게 불과 한달 전인데, 벌써 잊혀진 노래가 된 느낌이다. 위기의 싹들을 초기에 자르지 못하면 치명적 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한국 경제의 심각성은 문제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이라는 데 있다. 또 현재의 어려운 상황이 상당히 오래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경제부처 안에서도 “앞으로 최소 2~3년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그런데도 정부와 학계, 언론 그 누구도 진지하게 의제를 설정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기업이나 국가경제 차원에서 ‘위기’의 징후가 나타났음에도 ‘비상벨’을 제때 울리지 못해 파국을 맞은 뼈아픈 경험이 있다.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이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워크아웃에 돌입한 것은 1999년 8월이다. 하지만 ‘김우중식 세계경영’이 사실상 부도상태에 들어간 것은 98년 말이다. 당시 이런 심각한 상황에 경고음을 낸 것은 정부나 경제학자, 언론이 아닌 일본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의 보고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였다.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김영삼 정부가 세계은행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은 97년 11월21일이지만, 그 서막은 97년 1월 한보철강의 부도였다. 하지만 강경식 경제팀은 그해 여름까지도 “한국 경제 펀더멘털(기초)은 튼튼하다”고 큰소리쳤다. 정부와 관료만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다. 수많은 경제학자와 언론도 눈뜬 봉사였다.
우리 상황은 추운 겨울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아직 먹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딱한 처지에 빠진 곰에 비유할 수 있다. 좀더 먹을 것을 찾겠다고 눈보라 속으로 잘못 나섰다간 굶어 죽을 수 있다. 빨리 안전한 동굴을 찾아서, 오랜 동면기간을 견뎌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성장에서 안정으로의 선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정부 안에서조차 이를 믿는 이가 거의 없다. “이제는 정말 포지션(정책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심각히 오간다.” 경제부처 한 간부의 고백이다.
미래 성장동력을 찾고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정부·기업·국민 모두 발상의 전환과 합의가 필요하다. 대통령은 시장 신뢰를 잃은 강만수 장관의 교체를 거부하는 만용을 이제는 그만둬야 한다. 기업들도 최소 고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는 신자유주의 경영 패러다임을, 이익과 함께 고용도 가능한 한 많이 하는 상생형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바뀌면 노동자들에게도 고통분담 요청이 가능해진다. 이제 문제는 경제다. 더 늦기 전에 비상벨을 울려야 한다.
곽정수 대기업 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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