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7.24 19:35
수정 : 2008.07.2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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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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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프리즘
“한편으로는 망원경으로 보듯 넓고 멀리 봐야 하고, 또 한편으로 현미경으로 보듯 가깝고 치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7일 신임 인사차 방문한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남북 관계나 한-일 관계나 모두 양면을 함께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현미경으로는 독도 문제나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이나 답이 잘 안 보인다. 길게 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다. 망원경을 꺼내들고 2012년을 보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는 있을 것이다.
왜 2012년인가? 우선 남과 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정권교체 없이 지도자들의 임기가 일치한다. 내년 이명박 정부와 11월 선출될 차기 미국 행정부는 2012년까지 4년을 같이 간다. 중국도 2012년까지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유지된다. 북쪽에 무슨 정권교체가 있겠냐고 말할 수 있지만, 헌법상 임기 5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월 초 새롭게 뽑은 12대 최고인민회의에서 재추대될 것이며, 3기 정권을 출범시킨다. 역시 2012년까지 간다. 전문가들은 북쪽도 내부 정비 차원에서 조만간 국방위원 교체 등 큰 폭의 세대교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2012년 이후는 예측불가의 ‘시계 제로’라는 뜻도 된다. 예컨대 북쪽만 봐도 2012년이면 김 위원장은 일흔 살 고희다. 평균수명을 넘어선다. 세계보건기구의 ‘세계보건통계 2008’을 보면 북쪽 주민의 평균수명은 66살(남 64, 여자 68)로 나온다.
임기를 같이한다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권교체에 따른 불연속·불안정·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92년 노태우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임기를 같이했다. 남북, 북-미, 한-미는 이 시기 남북 기본합의서와 주한미군의 전술핵 철수, 그리고 비핵화 공동선언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93년 동시에 출범한 김영삼 정부와 클린턴 행정부는 출범 직후 터져나온 1차 핵위기에 부닥쳐 심각한 불협화음을 보였다. 또 그 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그해 말 미국 대선에서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훼손됐고,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은 12월 이명박 정부가 등장함으로써 단절됐다.
그에 반해 앞으로의 4년은 이른바 ‘선수교체’에 따른 이탈이나 공백 없이 공통 목표점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다. 2012년은 고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북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2년까지 경제와 인민 생활을 높은 수준에 올려놓음으로써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려는 것이 당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밝힌 바 있다. 2012년까지 경제강국 건설을 최우선 목표로 두겠다는 것이다. 93년 1차 핵위기 이래 15년, 북핵은 폐기 단계 진입과 이행이라는 최종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핵 보유와 경제강국 건설이 양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미국·중국도 닥쳐오는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중국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은 줄곧 변화(하려)해 왔고, 변하지 않은 것은 북한이 개혁하는 데 필요한 외부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2012년을 향한 북쪽의 선택이 어떤 것이 될지에 대한 공통의 토대는 이미 9·19 공동성명에 담겨 있다. 북쪽도 이에 합의했다는 사실이 출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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