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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17 20:38 수정 : 2008.07.17 20:38

정태우 편집1팀 기자

한겨레프리즘

서울 시청앞 광장이 봉쇄된 지난주말 태평로에서 세종로 거리는 공권력의 해방구였다. 비에 젖은 한 시민이 전경 지휘관에게 “왜 인도까지 막아서 길을 멀리 돌아서 가게 합니까”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지휘관은 “그러니까 알아서 돌아가셔야죠”라며 되레 쏘아붙였다. 죄다 틀어막고 알아서 돌아가라니, 기가 막힌 동문서답이다. 내우외환에 처한 이명박 정부, 막히고 닫힌 곳은 광장만일까. 광장을 점령한 채 시민들을 주눅들게 하는 공권력의 모습은 차별과 배제, 책임전가의 상징처럼 보였다.

“신뢰가 없다면 경제도 정치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서민생활에 부담이 되는 공공요금 인상은 최대한 억제하겠습니다.” 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한 대목이다. 대통령 발언 이후 채 일주일도 안 돼 지식경제부는 가스값을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또한번 곤두박질쳤다. 물가폭등은 멈출 줄을 모르고 주택 담보대출 금리마저 9%를 넘어 섰다. 신규 취업자 수는 3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민의 생활고통지수가 갈수록 커지는데도 정부는 ‘거리 민주주의’에 대한 보복과 탄압에 바빠 보인다.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까지 촛불시위에 떠넘기려 한다. 국민 대다수가 ‘고유가 상황에서 경제가 더 어려운 이유’로 정부의 정책 실패를 꼽고 있는데도 말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힘겨운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이등 국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라.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51%에 그치고 있다. 작업장에서의 차별 시정도 멀기만 하다. 1050일을 넘긴 기륭전자 분회, 파업 1년을 훌쩍 넘긴 이랜드-뉴코아 노동조합, 파업 800일을 넘긴 케이티엑스 승무지부,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등의 처절한 외침은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서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목숨을 건 고공농성 끝에야 겨우 마련되는 회사 쪽과의 대화 테이블은 노-사 자율교섭 뒤에 숨은 정부의 무대책과 무능력을 드러낼 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11년 간 실직 노숙인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거리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내모는 국가 폭력은 잠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자리 상실과 가족 해체, 주거공간 부재라는 삼중고를 겪는 사람들. 이들을 더 절망하게 하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차별과 편견이다. 빈곤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떠넘기고 방치하는 게 ‘능동적 복지’의 실체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 복지·교육·의료·기간산업 서비스 등 공공 부문에서 사회 공공성이 크게 후퇴할 것으로 우려한다. 정치권력이 선거로 뽑혔다 해서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단 한번의 절차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현돼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광장을 봉쇄하듯 시민들의 참여를 막고 의사 결정을 독점할수록 정부 정책에 의한 사회적 위험도는 증가한다.

“민주적 권리가 내부화함에 따라 적절한 조치에 대한 요구가 커졌지만, 정치적 헛수고와 허식적이고 상징적인 활동으로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형태가 어떻든 자기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조만간 이 세계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잘못을 미리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경고다.

정태우 편집1팀 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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